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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감도는 중동의 전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6일 전쟁」이래 『전쟁도 평화도 아닌』상태를 유지하던 중동의 정치·군사 정세는 또 다시 「이스라엘」과 「아랍」제국간의 전면적인 무력 충돌의 일보 전까지 다가섰다.
「뮌헨·올림픽」을 피로 물들인 『검은 9월 단』의 선수촌 「게릴라」기습과 그에 대한 서독 경찰의 발포가 인질 13명의 무참한 죽음을 낳았고 「이스라엘」군 정찰대가 남부 「레바논」의 「게릴라」기지를 보복적으로 추격한지 24시간만에 다시 「시리아」와 「레바논」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소에 대한 「이스라엘」 공군기들의 폭격이 감행된 것이다.
이 같은 전투 행위는 월남·중동 등 세계의 화약고에 타오르는 불길을 대국주의 적인 공존원리로 기화하려는 『미·소의 평화』를 근저로부터 붕괴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불씨를 던져줄지도 모른다는 데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하겠다.
대저 「아랍」 「이스라엘」 두 민족간의 대결을 핵으로 하고 석유 자원과 지정학적 중요성을 둘러싼 미·영·소 열강들의 세계 경영 전략을 외연으로 하는 「중동 문제」의 비극적인 현상은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 분할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추방을 씨앗으로 삼고있는 터이다.
수천년 동안 「팔레스타인」 땅에서 생물학적인 번식과 문화 인류학적인 의미에서의 공동체적 생을 영위해온 「팔레스타인」 주민들로서는 「구약 성경」과 미·영의 강대국 적인 요청에 의해 하루아침 사이에 땅과 집을 상실한 채 4반세기에 걸친 유민의 비애와 천막 생활의 고통을 당해왔던 것이다.
비록 그 땅은 「유대」 민족에 있어 「아브라함」이 「여호와」신으로부터 하사 받은 성지라 하더라도 「토인비」의 말마따나 그들의 명도 요구가 일종의 「시효 상실」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어느 한민족의 편을 들기 위해 아득한 선사의 자료를 고증할 입장은 아닌 만큼 오직 대국주의의 세계 전략이 빚어내는 약소 민족의 희생과 비극이라는 차원에서 중동의 전운이 가라앉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의 전단은 미·소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묵계 되었을 법한 중동의 현상동결 기운에 대한 「아랍」 혁신좌파의 최후 반발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미국이 월남에서 손을 떼는 대신 소련은 「아랍」에 대한 공격무기 원조를 자제한다는 묵계 설이 강력히 떠올랐었고, 「이집트」의 「사다드」 대통령이 소련의 고문관들을 추방한 것 역시 그 같은 기운에 대한 새로운 외교방향의 모색에서 나온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요르단」의 「후세인」 왕은 공공연히 대 「이스라엘」 협상과 친 「이스라엘」적인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을 시사했는가하면 소련과 「이스라엘」간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모종의 암시도 심심찮게 지적되곤 했었다.
더구나 「이집트」마저 일부에서 대미 수교를 운운하기에 이르면서 강경한 「나세르」 주의자인 「리비아」의 「카다피」혁명 평의회의장이 온건파의 「쿠데타」 위협에 직면한 사태가 뒤따랐다.
이처럼 「실지 회복」을 위한 「코란」대 「시오니즘」의 성전이 강대국과 「아랍」보수파 및 혁신타파에 의해 공수표로 돌아가는데 대해 「팔레스타인」난민들의 무장 세력인 「게릴라」 각파들은 격렬한 반발과 초조감을 일련의 「하이재킹」과 인질 납치·폭파 사건 등으로 표면화함으로써 『강요된 휴전』이나 『강제된 평화』를 깨뜨리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만큼 비록 「게릴라」들의 이성을 잃은 폭거는 준엄히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겠으나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피맺힌 고난이 대국의 이익만을 위해 묵살되지 않고, 「이스라엘」의 감정적인 보복주의와 점령지에 대한 아집이 합리적으로 처리되는 차원에서 중동의 전운이 하루속히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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