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회담과 한국조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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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20일자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에 의하면 「키신저」미대통령특별보좌관은 최근 동경에서 가진 일본정계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오는 31일 하와이에서 개최 예정인 미·일 정상회담의 「닉슨·다나까」공동성명에 한국과 대만에 대한 방위조약의 적용을 다시 확인하는 문구를 삽입토록 제의했다고 한다.
키신저씨의 방일요담은 미·일 정상회담 개최의 정치적인 정지공작에 그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동경에서의 미·일 고위회담이 미국이나 일본의 대 중공 국교정상화 작업 진전과 관련하여 한국이나 대만문제를 토의하였으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 자리에서 그러한 제의의 유무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런 문제는 한국의 중대관심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다나까」 내각 최대의 정치적 과제는 중공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나아가서는 국교를 정상화하는데 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중공과의 관계개선을 열망하는 나머지 초조감에 사로잡혀 대 중공 국교정상화문제에 있어서 맹방인 미국과 경쟁을 벌여도 무방하고, 대만은 물론 심지어는 한국까지 희생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가끔 자아내게 하였다. 따라서 극동의 평화를 중시하는 미국이 일본과 정상 회담을 열어 일본의 이기적인 독주경향에 쐐기를 박아 일·중공간의 관계 개선이 미·일간의 동맹유대에 금이 가지 않게 함은 물론, 한국이나 대만의 안전보장에 화를 입히지 않도록 사전대책에 만전을 기해 두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최근 일본은 중공과의 국교정상화를 하기 위해서 대만에 있는 국부와의 정치적·외교적 관계를 단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주일 미군기지를 대만방위는 물론 한국의 방위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까지도 노골적으로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로 말미암아 일본이 한국이나 대만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에 대한 외교적 지원을 철회할 날도 멀지 않으리라는 것은 과반 미국의회공청회에서 극동문제 전문가들이 이미 지적한 바이다.
대중공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더라도 한국이나 대만에 대한 방위공약을 충실히 지켜 맹방의 이익을 추호도 희생치 않고 극동의 안정과 안전을 이룩하려는 미국의 입장과, 중공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한국이나 대만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여 이 지역의 정세를 불안 동요케 해도 무방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본 입장은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이와 같은 대조는 군사대국인 동시에 경제대국인 미국과 경제대국에 지나지 앉는 일본의 세계정책상의 차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외교정책의 수립이나 전환에다 아직은 도덕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있는 미국과, 이를 거의 무시하다시피 하는 일본의 정치적 전통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다.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서도 작은 것을 희생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미국의 생각이라면, 보다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것은 헌신짝처럼 내버려도 좋다는 것이 지금의 일본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 작은 것이라는 것이 독립해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국가의 존립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일본의 사고방식은 너무도 근시안적이요, 너무도 몰 도의적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일본은 그들이 현재 세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나 동 「아시아」 안보문제에 있어 수행해야할 역할 및 책임을 더 깊이 자각하고 한국과 대만에 대한 방위조약을 재확인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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