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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민족문학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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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4공동성명을 계기로 격동하는 현실 속에서 우리문학은 어떻게 변모하고 있을까. 걷잡을 수 없이 급변하는 역사적 상황과 관련해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이른바 「민족문학론」은 창작계에서 어떤 반응을 보여주고 있나?
이 같은 절실한 관심에서부터 이 달의 소설을 조심스럽게 점검해 보자. 본래 문학이 현실을 가장 민감하게 반영하면서 밝은 내일을 희구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매스컴」처럼 시시 각각으로 전개되는 현실을 당장에 표현할 수는 없다. 때문에 성급히 독자의 해갈을 시원히 풀어줄 수 있는 민족문학의 대작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것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의 소설을 접하면서 오늘의 많은 작가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전신투구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한 일이다. 그것이 비록 민족문학의 핵심을 통쾌하게 적중하는 걸작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문제성을 내포하고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작가들의 창작에서 공통적으로 저류되고 있는 특징은 이렇게 집약될 수 있다. 첫째 남북의 분단에서 오는 비감과 통일에 대한 염원이다. 둘 째 일제통치를 뼈저리게 회고하면서 오늘의 일본을 경고하는 것. 세 째는 이농과 귀농에 얽힌 희비극. 네 째는 「애브노멀」한 애정윤리 등이다.
이 같은 주제의식은 바로 민족의 주체성과 외세에 대한 저항, 그리고 현실비리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제 그 대표적인 「케이스」를 작품 속에서 추구해본다.
유주현의 『잠보다 긴 꿈』(현대문학)은 이산가족의 극적인 상봉을 꿈으로 엮고 있다. 노교수「한동철」은 방문인단의 일원으로 고향인 원산으로 찾아간다는 것. 휴전선을 넘어 평양 벌을 관통하는 삼방강을 거쳐가는 기차 속에서 벌어지는 젊고 늙은 일행들의 넋두리는 웃어넘길 수 없는 우리 비극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
30년만에 만난 아우 「동춘」과의 통화에서도 남북현실의 단절에서 빚어진 심각한 격차가 부각되고 있다. 또 노교수 「한동철」이 미친 여자에 대한 직업적인 동점으로 북쪽방문의 인도적인 씨앗을 뿌리려는 노력도 거부되었다는 귀결이다. 이것이 비록 환상에서 그려졌지만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얼마큼 열망하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는데서 주목된다.
한편 이주홍의 「음구」(신동아)와 손동인의 「교육칙어」(현대문학)는 다 함께 지난날 일제하에서 우리 겨례가 겪었던 수난을 악몽으로 되새겨 주고있다.
이 같은 회고의 문학은 근래에 와서 꽤 많이 유행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흥미나 사건에서가 아니라 존엄한 역사의식에서부터 평가되어야 한다.
「음구」에서는 해방직전 우리애국지사들에 대한 일제의 검거사건에서 얘기가 비롯되고 있다. 노유학자 「죽당선생」과 그의 아들 「미산」은 「마쓰바라 부장」에게 붙들러 몹쓸 고문을 받는다. 마침내 고초에 못이긴 아버지는 옥사하고 여기에 충격 받은 어머니마저 자결해버린 「미산」회 그는 8·15를 맞아 풀려 나와 치안대의 선봉이 된다. 이때 사상이 된 「마쓰바라 부장」은 「미산」에게 애걸복걸 매달린다.

<윤 선생! 산 사람이 또 어디서 어떻게 만나 질지 세상일을 누가 압니까.> 이런 말을 남기고 멀리 고향으로 도망쳤던 「마쓰바라 부장」이 세월이 흘러 지금은 「한화상사사장 심정」 이란 이름으로 둔갑했다. 겹쳐서 「미산」의 아들과 「심정」의 딸은 이미 사랑이 깊어져 성혼을 서두른다는 것. 「미산」은 이 엄청난 역학 앞에서 비탄만을 연발하지만 뾰족한 묘안이 마련되지 못한 체 「음구」는 종지부를 찍는다. 요는 이 같은 극적인 사건보다도 세월이 변색되어 간다는 것. 그리고 새롭게 다시 등장하는 일본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작단의 주목거리는 농촌문학의 새바람이다. 이 달에도 오유권의 「추수」(월간중앙)와 유현종의 「우촌리 소씨」(현대문학)그리고 오택반의 「한 겨울의 꿈」(현대문학) 등은 오늘의 농촌을 배경으로 재미있는 설화를 펴고 있다. 「추수」는 도시에서 귀농 해서 행복을 되찾게 된다는 얘기. 10여 년만에 귀농한 주인공은 「문안양반」, 「문안 댁」으로 통했다. 오래간만에 흐뭇한 추수를 보고 올벼심니(추수제)를 벌인다든가, 아들 「장호」가 양가 댁 규수와 택일이 되어 성혼하게 되었다는 「해피·엔딩」. 오늘의 새마을운동에 걸 맞는 농촌 물이지만 「리얼리티」의 심도가 문제로 남는다,
여기에 비해 「한 겨울의 꿈」은 이학의 패배기가 엮어진다. 전답과 가축을 팔아 상경한 「소생」은 죽마지우 「용팔이」와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일확천금을 꿈꿨지만 끝내 허황한 꿈이 되고 만다는 줄거리다.
온 재산을 털어 준비를 했지만 이상난동으로 입춘이 되기까지 얼음은 열지 않았다. <허욕에 들뜬 뭇 사람들은 바로 허욕을 부리는 그 장소의 땅속에 자신의 시체가 상제의 벌을 받아 묻혀 있음을 명심하는 게 일신상에 해롭지 않으리.>바로 이 대목이 작가의 교훈인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우촌리 소씨」는 해학적인 수법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돌배나무 집의 소씨가 6년 동안 근동의 논밭을 혼자서 갈아주고 농토 건설 중에 쓰러졌다.>-. 이것이 기사화 되어 마련된 <우촌리 소씨 구주년생신축하회>는 한바탕 희화를 연출한다. 이 축제를 위해서 모여든 이장 허어씨, 군수 나병신씨, 시인 허승씨, 대실업가 이도굴씨, 한가한 의원 등의 어설픈 소동은 끝내 소씨를 괴롭히고 수라장을 만들었다는 것.
한편 정연희의 「갇힌 자유」(현대문학)와 박순녀의 「질투」(창조)는 부조리한 애정윤리를 「그로테스크」하게 그리고 있다.
「갇힌 자유」에서는 남편이 의처증 환자다. 출근을 하면서 남편은 「아파트」의 문을 잠가버린다는 것. <나는 자유롭고 가볍다. 갇혀있기 때문에.
나의 방일한 공간과 그것에 따르는 책임을 남편이 대신 짊어져 주기 때문에.>
그러면서도 남편의 열쇠소리를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가사의의 여인상이 궁금하다. 작품 분위기로는 이상의 「날개」를 연상케 하지만 고민하는 현대인의 상징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이 밖에 박완서의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현대문학)도 한번쯤 화제에 오를만한 작품이다. 악령같이 남아서 괴롭히는 이른바 연좌법의 피해자가 신음하는 목소리가 생생하다.
「월간문학」이 「소설50인선」을 특집해서 「콩트」를 내놓고 있다.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많지만 월평의 대장에서 제외되었다. 【윤병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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