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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수 칼럼] 느리게 하기의 최대치 … 나태한 혹은 기이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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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호 27면

러시아 피아니스트 유리 예고로프(1954~88).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입상한 뒤 1976년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이후 서방에서 활동했다. [사진 EMI]

발견의 즐거움, 그런 것이 있다. 소설이든 영화든 또는 어떤 음악이든.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언젠가 우연히 마주쳤던 경험의 산물일 텐데 유독 특별히 저장되는 경험이 있다. 그것이 발견의 즐거움이다. 사전정보가 없었을 때 그 기쁨은 배가된다. 헤세가 누군지도 모르고 데미안을 읽었던 중학교 때 전율의 체험이 그렇고, 시인의 부인의 동생의 선배의 친구(!)에게서 건네받았던 이성복의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충격이 그랬다. 나중에 이 땅의 모든 시인 지망생이 그 ‘뒹구는…’을 읽으며 밤잠을 설쳤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분이 이상했다. 그런데 그중에는 극소수에게만 발견된, 그러니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존재도 있다. 그럴 때 그 대상은 발견자에게 각별해진다. 홀로 찾아낸 심산유곡의 꽃송이라고나 할까.

[詩人의 음악 읽기] 유리 예고로프의 ‘바흐 평균율’ 연주

피아니스트 유리 예고로프가 그랬다. 1970년대에 제법 평판이 높았고 비극적인 인생사를 거쳐 34세라는 창창한 나이에 에이즈로 죽었다는 사실도 미처 몰랐었다. 레퍼토리가 섬세해서 벨기에의 파반느 레이블을 무척 좋아하는데, 우연히 LP로 구입해 처박아 놓았다가 듣게 된 음반이 ‘예고로프가 연주하는 바흐, Egorov plays Bach(작은 사진)’였다. 바흐 평균율 1집의 24번 전주곡과 푸가(BWV 869)의 아주 특별한 연주를 그 음반에서 만났다.

느리게 하기의 최대치, 어떠한 강세도 두지 않아 잔물결의 파형처럼 번져나가는 고적함, 소리의 진폭을 최대한 억제해서 모노톤으로, 의도된 단조로움으로 연주는 흘러간다. 시끄러운 장소에서 초탈한 표정으로 조용조용 말하는 사람에게 신경이 쓰이는 이치와 비슷했다. 연주가 남다르다 보니 일화도 생겨난다. 내 작업실 천장의 휴대전화 중계기 수리하러 온 청년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작업 사다리에 서서 넋을 놓고 감상에 열중하는 일이 있었다. “좋아요?” 물어봤다. “크라식 처음 듣는데 되지게 좋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 그 친구 표정이 마치 꿈꾸는 듯했다.(사진이라도 찍어둘걸!)

바흐 평균율과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피아니스트의 개성과 의도를 파악하는 데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한다. 예고로프는 17분23초에 걸쳐 평균율 24번을 연주한다. 가장 먼저 비교 시청한 안젤라 휴잇의 연주는 11분38초였다. 한때 글렌 굴드 이래의 바흐 선풍이라며 칭송이 자자했던 휴잇의 연주가 너무 평범하게 들려 놀랐다. 계속 진도를 나갔다. 안드라스 쉬프는 12분1초였는데 굴곡이 다채로우면서 역시나 최고라는 감탄이 나왔다.

아예 스타카토처럼 점점이 찍어 치는 프리드리히 굴다의 연주도 들었는데 16분38초, 의외로 길었다. 빠른 속도였으나 음간의 휴지부를 많이 둔 탓이다. 약에 취한 듯 몽롱하게 전개되는 스비아토슬라브 리히터 연주는 15분22초, 글렌 굴드는 타이밍이 음반에 기재되지 않았는데 늘 그렇듯이 속사포 연주였다. 속도가 그리 중요한 것일까만 예고로프의 연주 특성이 그렇듯 느린 전개에서 비롯되는 것은 틀림없다. 꽤나 열광했던 팝/재즈 가수 리키 리 존스의 노래를 두고 ‘부르기 싫어서 대충 부르다 말다 하는, 그런데 비교대상이 없는 절정의 목소리’라고 소개하곤 했었다. 예고로프의 실제 연주모습이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랑랑처럼 땀을 뻘뻘 흘리고 씩씩거리며 연주하지 않을 것은 틀림없다.

예고로프의 인생사를 상세히 알게 된 것은 이영진의 『마이너리티 클래식』이라는 책자를 통해서였다. 일단 한 대목을 인용해 보자.

‘예고로프는 현실을 망각하고자 밤이면 펑크족과 몰려다니며 마약을 흡입하고 주사를 맞았다. 스피드와 해시시와 코카인에 취하여 연주장에 나타났다. 방만한 자에게 찾아온 것은 에이즈. 합병증으로 뇌수막염이 발병하여 공연 취소가 빈번해졌다…. 그는 날을 정해 안락사로 생을 끝내기로 했다. 서른넷의 나이다’.

억압적인 소련에서 태어나 7년 징역형에 처해진다는 게이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다. 온갖 콩쿠르에 다 참여했으나 늘 3, 4위에 머무르며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다. (개성을 버려야만 콩쿠르 기준에 맞춰 우승할 수 있다고 했던 그의 탄식!) 어렵사리 이룬 네덜란드 망명과 현실 부적응. 막장 행각과 에이즈와 이른 죽음. 그렇지만 그의 생전에 평론가들은 일치된 평가를 내렸다. 예고로프 고유의 낭만성, 서정성, 순정함에 대한 예찬이었다. 신세는 고단했지만 그는 운명과 맞서는 대신 천진스러운 아이처럼 굴었다. 그 또한 하나의 경지일 것 같다. 그는 생김새조차 천진한 소년같이 보인다.

EMI에서 7장 묶음으로 나온 예고로프 선집이 있다. 드뷔시 전주곡집을 제외하고 그 안의 슈만, 쇼팽, 베토벤은 의외로 평범했다. 마약하는 스피드광의 연주가 아닌,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결심의 산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나는 기이하게 (혹은 나태하게) 바흐 평균율을 연주하는 예고로프가 좋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만 발견되는 어떤 경지가 있으니까. 어쩌면 그의 내면은 평온하고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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