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수필. 아동문학 활발한 움직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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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문학의 「장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생성·발전·쇠멸하며 또 변형되고 분화되고 교체되는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어느 문학사회에서는 존재치 않는 문학의 「장르」가 다른 문학사회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할 수도 있으며 어느 문학사회에서든지 새로운 문학 「장르」의 개발은 늘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은 문학의 「장르」가 꽤 다변화된 셈이지만 1908년 신문학이 개화한 이래 극히 최근까지 「장르」별 문학활동은 시·소설·평론 등 3, 4개 분야에 국한된 느낌이었다.
문학의 장르를 고려한 것이 아니라도 현재 한국문인협회 산하에는 시·시조·소설·아동문학·희곡·평론·수필·번역 등 8개 분과 위원회가 있으나 이제까지 분야별 활동이 고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문학지 종합지 등 관계 「매스컴」이 이러한 우리문학의 각분야를 똑같은 비중으로 다루지 않은데 그 원인이 있고 따라서 시·소설·평론 이외의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 만큼 자기분야 문학에 대한 의욕 상실증에 걸린 것으로 풀이돼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매스컴」이 시·소설·평론에 대한 편중경향을 불식하는 듯한 움직임이 보이고 대중들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보다 폭 넓어짐에 따라 우리 나라의 문학활동은 눈에 띄게 다변화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학활동의 다변화는 특히 시조·아동문학·수필에서 두드러 진다. 이것은 얼마 전까지 시조가 시 분야의 한 귀퉁이를, 아동문학 중 동화가 소설분야의, 동시가 시 분야의 한 귀퉁이를, 수필이 평론의 한 귀퉁이를 각각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볼 때 괄목할만한 문학 「장르」의 다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지·종합지의 시조·아동 문학·수필에 대한 전례 없는 배려는 차지하고라도 최근 이들 문학분야에서의 각종 출판물 출간은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고있다..
이들 분야에 있어서 개인의 작품집 출간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지만 개인 작품집 출간도 날이 갈수록 빈번해지는 데다가 일반독자를 대상으로 한 정기(월간·계간) 간행물도 하나씩 둘씩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장르」의 다변화를 전제로 한 우리문단의 발전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현상으로 풀이된다.
특히 월간 「수필문학」·계간 「동인수필」·계간「시조문학」·「낙강」·계간 「아동문학」·「아동문학사상」등 정기간행물들이 창간 당시의 예상을 뒤엎고 착실히 연륜을 쌓아올리고 있음은 이들 분야의 발표 지면이 그 만큼 안정돼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사실 이들 분야에 대한 문단 자체 내지 독자의 관심은 아동문학가 어효선씨가 말하듯 「서자취급」을 받아온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이들 분야에 대한 「서자취급」 풍조는 젊은 문학인들로 하여금 이 분야에 대한 지망을 스스로 기피하게 만들었고 어떤 매력 때문에 이 분야를 지망했다해도 소외감 때문에 생각대로의 활동을 펴보지 못하는 게 상례였다.
『이것은 「장르」에 대한 우리 문단의 모호한 개념도 그 한가지 원인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문학평론가 윤병노씨의 견해인데 어효선씨는 『아동문학의 경우 비록 아동문학을 독립된 문학 「장르」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들이 많다 해도 동시가 1908년 최남선(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부터, 동화·동요가 1923년 마해송·윤석중에서부터 시작된 것을 생각할 때, 우리 나라에서 아동문학을 문학의 한「장르」로 취급하지 않으려는 일부 견해가 있다면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장르」의 개념 문제는 시조·수필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미 몇 권의 수필집을 낸 바 있는 K씨는 『신변잡기도 수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신변잡기를 문학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좀 어떨까 싶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윤병노씨의 말대로 『시조·수필·아동문학이 많은 형태와 많은 내용을 지님으로써 작품을 만들기에 따라서 문학의 어느 「장르」보다도 깊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여하간 이들 분야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문학적 개발도 우리 문단발전의 한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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