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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평론 어느덧 50년 … 내 인생은 질경이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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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홍준 교수는 미학에서 미술사로 방향을 틀도록 한 ‘인생의 책’으로 바사리의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과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들었다. [오종택 기자]

퇴임 고별 강연회라기보다 정년 맞이 축하연이었다. 석별을 아쉬워하는 눈물 대신 새 출발을 응원하는 박수가 터졌다.

 28일 오후 서울 남가좌동 명지대 방목학술정보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유홍준 교수 정년퇴임 기념강연회’. 이날 행사는 공부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는 한 미술사가의 고백의 자리였다.

 명지대 미술사학과에서 정년을 맞은 유홍준(64) 교수는 인생길에서 만난 선후배와 친구들은 물론 스승과 제자 300여 명이 그득한 앞에서 “강의와 집필은 계속된다”고 선언했다.

 “나는 학자라기보다 평론가, 미술사가라고 부를 때 나 같습니다. 간혹 저를 저술가, 작가라고 부르는데 그건 내가 아닌 것 같아요. 교보문고가 선정한 10대 작가에 조정래·황석영 같은 분들 사이에 인문학자로 유일하게 끼어서 좀 민망했죠.”

 이런저런 유익한 말을 잘하기로 소문나 별명이 ‘교육방송’인 그다운 강연이었다. 지난 50여 년 걸어온 학문의 길을 그는 ‘미술사의 사회적 실천을 위하여’란 목표에 충실한 삶이었다고 돌아봤다.

 “미학과에 들어가 책을 펴니 관념의 유희, ‘구라 경진대회’ 같았어요. 당시 강사였던 김윤수 선생께서 권해주신 바사리의 『이탈리아 미술가 열전』을 읽으며 이런 책을 하나 써야겠다고 결심했으니 선생은 나를 미학에서 미술사로 개종시킨 분이죠. 1960년대 후반 계간 ‘창작과비평’에 실린 백낙청·염무웅·리영희 선생의 글을 보며 저 분들이 문학에서 한 일을 나는 미술사에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유 교수는 자신을 의식화시킨 동시대 학문의 도반(道伴·함께 도를 닦는 벗)을 일일이 거론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당신은 사람은 괜찮은데 역사의식이 부족하다”며 현실을 직시하며 살라고 훈계했던 서중석 성균관대 명예교수, 라이트 밀즈의 『들어라, 양키들아』 같은 책을 추천해주고 이동주 선생의 ‘우리나라 옛 그림’ 연재를 발견해준 최재현 전 서강대 교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유물 촬영을 하며 만나 평생 미술사 공부의 삼총사가 된 윤용이·이태호 명지대 교수 등이 청중석에서 친구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한마디로 질경이 같은 인생이었죠. 민청학련 데모 사건으로 감옥에 갔다가 대학 졸업을 못해 고졸 신분으로 금성출판사·공간·계간미술 등을 전전했지만 좋은 분들을 만나 미술사와 현실을 묶어 생각할 수 있는 방향을 잃지 않았으니까요. 1980년대 민중미술가들 작업을 기록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나는 좋은 평론을 쓰는 것보다 작가의 작업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좋은 평론가로 남기를 희망했지요.”

 그런 그를 선배인 성완경씨는 “유홍준은 미술평론가가 아니라 ‘미술평론 주식회사 사장’ 같다”고 평가했다.

 유 교수는 “문화재청장도 미술사의 사회적 실천의 하나로 맡았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내게 정치를 하라, 국회의원 나오라는 주문이 있지만 난 안 한다”며 “외도를 할라치면 ‘꽃보다 할배’에 나가는 게 적성에 맞다”고 했다.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쓰는 데 선수였던 그가 내심 대표작으로 여기는 책은 무엇일까. 청중의 궁금증을 그는 청산유수로 풀어주었다.

 “제 인생의 책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입니다. 살다 보니 어느 날인가부터 매달리게 됐지만 지금도 진행 중인 필생의 작업입니다. 미술사가로 살아가면서 마땅히 낼만한 책을 냈는데 우연히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할까요. 내 친구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 교수가 월간 ‘사회평론’을 창간하며 부추겨서 시작했지만 원고료를 받지 못하는 대신 내 맘대로 쓰겠다고 100매씩 썼죠. 바로 미술사의 사회적 실천을 위해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한 겁니다.”

 그는 답사기를 아홉 권 펴내며 “쉽고 짧고 간단하게 쓴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임을 절감했다”고 털어놨다. 미술사를 공부하는 후배들에게는 “스님이 되기 위해 머리를 깎고 절집에 들어왔다고 여길 정도의 각오가 없으면 아예 들어오지 마라”고 조언했다.

 답사 다니고 책 쓰느라 집안일과 가족을 방기한 유 교수는 청중석에 앉아있던 어머니와 아내를 소개하며 말했다.

 “우리 집사람이 석좌교수로 일하게 됐다고 보고하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정년이 되어 퇴임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퇴임 기념이라고 그러슈. 차라리 정년 시작 기념이라고 그러구려.’ 정년 이후 인생을 그렇게 이어가렵니다.”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유홍준=1949년 서울 생. 서울대 미학과,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 1981년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뒤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며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 제1회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영남대 교수 및 박물관장, 문화재청장 등을 거쳐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정년 퇴임한 뒤 내년부터 석좌교수로 일한다. 저서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화인열전』 『완당평전』 『명작순례』 등이 있다.

명지대 정년퇴임 기념강연회서 만난 유홍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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