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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오랜만에 금호동 언니 집을 찾았다. 대문을 막 들어서는데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와 언니의 퉁퉁 부은 얼굴을 대하자『참 그때 언닌 만삭이었지』하는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이내 그 동안 한번도 언니의 출산을 생각해보지도 못했던 내 무관심에 스치는 아픔을 느끼며 그 서러운 산모를 바라보는 내 눈이 뜨거워진다.
누렇게 얼굴이 변해 설움에 우는 언니, 그 아무도 원치 않는 다섯 번째의 딸을 또 낳았다. 언니는 그저 죄스러움과 후회와 아가에 대한 가엾은 마음으로, 그리고 식구들의 원망의 눈길에 쫓겨 사흘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물에 손을 넣어야했다.
예부 터 많이도 겪어온 우리네 여자들만의 숙명이요, 설움이 아닌가. 난 아직 2주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 계산 없는 아가를 바라보며 정말로 잘 생겼는데 에 놀랐다. 그리고 언니의 그 슬픈 모습에서 누구에겐 지도 모를 분노를 느끼며 일어섰다.
돌아오는「버스」속에서 난 언니와는 대조적인 요즘 여자들을 생각해 본다. 얼마나 이기적이며 영리한가를. 자식을 위한 맹목적인 희생이나 사랑 같은 것은 없는 듯하다. 그리고 조금은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어쨌든 적어도 아들을 바라며 딸을 다섯이나 낳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게 아닌가.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 언니처럼 딸만 가진 엄마의 마음속엔 아들을 원하는 측은한 기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빨리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남녀노소간에 말끔히 가셔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천수아<서울 동대문구 이문1동 190의11·박수근씨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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