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제 칼럼

세무조사 요란하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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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

내년 복지예산이 마침내 100조원을 넘어선다. 올해보다 8조5000억원 늘어난 106조원이다. 본예산 358조원 가운데 약 30%다. 박근혜정부는 역대 어느 정권보다 복지를 강조하고 있지만 증세는 없다는 입장이다. 재원 충당에 대해 물으면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불요불급한 예산은 깎고, 지출의 낭비요소는 줄이고, 탈세 조사는 강화한다는 것이다. 앞의 두 가지는 이미 내년 예산을 짜면서 쉽지 않음을 실감했을 게다. 그런 식으로 빼서 복지예산으로 돌릴 돈이 생각만큼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방법은 만만할까. 그렇지 않다. 전방위 세무조사는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오고 있다. 탈세는 당연히 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좀처럼 뿌리 뽑히지 않는다. 어떤 선진국도 탈세 없는 나라는 없다. 다른 범죄와 달리 세금은 예민하다. 손 안에 든 새와 비슷하다. 너무 죄면 질식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세금에 대해 국세청 직원은 탈세, 기업 측은 절세라 우긴다. 법대로 따지면 세무공무원 말이 맞는 경우가 많을 게다. 그럼에도 너무 거칠게 다루면 곤란하다. 기업인 입장에서 세무조사로 거액을 추징당하고 나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돈이 국고로 들어가 불우 아동과 독거노인을 위해 쓰인다 해도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기업주는 세금 빼앗기지 않는 법을 연구한다. 기업의 의욕은 떨어지고 요령껏 일하는 길을 모색하게 된다.

 기업인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정부는 어떡해야 하나. 융통성을 발휘해 다독일 줄 알아야 한다. 불의와 타협하라는 뜻인가.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성장과 일자리가 그들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2.0%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성장률은 올해도 2.8%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이 국내총생산(GDP)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1953년 이후 3년 연속 2~3%대 성장은 처음이라고 한다.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짜면서 전제한 성장률은 3.9%다. 2년 연속 2%대 성장으로 바탕이 낮아진 걸 감안해도 너무 낙관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는 아직도 글로벌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우리 경제는 저성장 구조가 굳어지고 있지만 이를 심각하게 여기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저출산·고령화로 인구 피라미드는 빠르게 변형되고 있다. 일할 사람은 줄어들고 노년층만 늘어나면 경제가 활력을 잃는 건 당연하다. 다들 고용이 중요하다고 외치지만 그걸 창출하는 기업에 대한 배려와 격려는 인색하다. 기업인들의 기를 살리는 것이 우선이다.

 복지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있지만 걷히는 세금은 더 줄어들 수 있다. 경제활동이 위축돼 성장률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은 그런 사실 공개를 꺼렸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동병상련하며 서로 연대하는 분위기다. 국세청의 요란한 조사가 혹시 청와대를 향한 외침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은근하고 끈기 있게, 세무조사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

심상복 중앙일보 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