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탄 '김해 마약왕' 모닝에 잡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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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난 7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 윤재필) 소속 검찰 수사관 8명이 경남 김해로 급파됐다. ‘김해 마약왕’으로 불리는 히로뽕 판매상 오모(43)씨에 대한 첩보를 입수한 직후였다. 수사팀은 김해 상동에서 오씨의 최고급 벤츠 승용차를 발견하고 추격에 나섰다. 검찰 승합차량을 눈치챈 오씨는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벤츠를 승합차가 따라잡기는 역부족이었다. 검찰은 국도를 타고 달아난 오씨의 벤츠 차량을 10여㎞쯤 쫓다 승합차의 속도를 일부러 늦췄다.

 그러자 오씨도 김해 체육공원 인근에 이르러 벤츠의 속도를 늦췄다. 검찰 승합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추격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해서다. 그때 갑자기 뒤에서 오던 경차 모닝이 오씨의 벤츠를 가로막았다. 검찰이 승합차만으로 오씨를 붙잡기 어렵다고 판단해 사전에 빌린 차량이었다. 모닝에서 내린 검찰 수사관들은 오씨의 벤츠 차량으로 달려들었다. 당황한 오씨는 벤츠를 급히 옆으로 돌려 달아나려다 도로 밖 언덕에 처박혔다. 수사관들은 정신을 잃은 오씨를 붙잡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중국에서 밀수한 히로뽕을 국내 도매상 등에게 대량으로 유통한 혐의(마약류관리법 위반)로 오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24일 밝혔다. 붙잡힌 오씨에게선 히로뽕 약 370g(1만2000명 동시 투약량, 1억2000만원 상당)을 압수했다. 오씨로부터 마약을 사들여 서울·성남 등지에서 유통시킨 폭력조직 ‘미아리파’ 조직원 최모(43)씨 등 5명도 함께 구속 기소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은 고향 선후배 사이거나 교도소 수감 중 친분을 쌓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씨는 김해에 살며 경남 일대에서 마약을 가장 크게 유통시켜 주변에서 ‘김해마약왕’으로 통했다. 약속을 잡을 땐 ‘대포폰’을, 거래대금을 주고받을 땐 차명계좌를 이용했다. 벤츠를 타고 다니며 차 안에서만 히로뽕을 거래하는 등 철저하게 신분을 숨겼다. 히로뽕을 거래할 땐 녹차 티백 봉지에 담아 일회용 주사기와 함께 건넸다. 한 번 건넬 때마다 최소 10g(300명 투약분) 이상씩 대량으로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윤 부장검사는 “벤츠에 주변 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망원경과 유사시를 대비한 일본도를 싣고 다녔다”며 “거래 약속을 잡은 장소에 도착하고서도 한참 동안 차에서 내리지 않고 수차례 주변을 돌거나 동거녀를 보내 사전에 주변을 탐문케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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