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감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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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올 들어 거의 모든 상품이 25%씩이나 출고가 줄어들었다는 국세청 집계가 발표되었다.
수요가 줄어들면 출고도 줄기 마련이다. 당연한 얘기다. 수요가 준 것은 또 그만큼 구매력이 줄었기 때문이다.
구매력이 줄어드는 것은 불경기나 불황의 탓이라고 경제원론에서도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원론만으로는 풀어지지 않는 게 우리네 경제 현상이다. 구매력이 줄어들어 상품이 안 팔리게 되면 물건값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헐값에라도 팔아버리는게 잔뜩 재고를 끼고 있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이런걸 경제학 책에서는 수요·공급의 원칙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구매력과는 아랑곳없이 가격은 꾸준히 올라만 가고 있다.
연간 물가 상승률은 평균 15%의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우선 물가란 전반적으로 오르기 마련인 것이 일반적 추세이다.
그런데다 수입 원료 값들이 다 오르고 또「달러」환율도 올랐다. 물품세도 올랐다. 물가가 안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팔리는 만큼 값을 올려서 팔면 된다는 것일까. 이런 역리가 성립되는 것도 역시 우리네 경제계의 특수 생리 탓이다. 원래가 수요가 줄어들면 거기 따라서 공급이 준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에서는 수요와 공급이 동시에 줄어든다. 그러니 재고품 걱정을 할 필요도, 값을 내린 필요도 없다.
다만 기이하게도 꼭 두 가지 품목만은 출고가 70%이상씩 늘었다. TV「세트」와 청량음료다.
불황 때 제일 먼저 타격을 받는 것은 건축재이다. 그 다음이 사치 성향 상품들이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에선 TV「세트」만은 더 많이 팔렸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결코 기이한 일도 아니다. 가령 작년에 10만원짜리였던 TV는 올해에는 다른 물가와 발맞춘다면 13만원짜리가 되어야 한다.
그게 오히려 7만원이 됐다면 6만원이 싸진 폭이다. 안 살 수 없을 것이다.
더우기 이젠 TV는 생활 필수품화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뿐만도 아닐 것이다 호주머니가 비어 있고 밖에서 조금도 재미를 볼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집안에서 「텔리비젼」이나 보겠다고들 생각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청량음료들이 잘 팔리게 된 것에도 여름철에 들어섰다는 이외에도 이유가 또 있을성싶다.
「콜라」류는 안마실수도 있다. 단순한 불황 때라면 이런 것부터 줄여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푼돈 모은다고 목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해마다 화폐의 구매력이 저하되고 있는 판에 오늘의 10만원이 2년 후에 몇 푼 어치의 값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오늘 아무리 절약한다고 내일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큰 탈인 것이다.
이른바 「스테그·플레이션」의 병리도 이런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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