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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 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화려한 불빛 속에 찾아오는 도시의 밤과는 달리 농촌의 밤은 더 깊고 적막하다.
『첫아들을 낳아야 안심이고, 들로 밭으로 기운차게 일을 해야 건강하다』는 시 조모님 방에서 긴 담뱃대를 털며 말씀하시는 어른들의 교훈은 두 번씩이나 조산한 며느리인 나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 것처럼 느껴진다. 남달리 아들이 귀한 집안인데 S병원「인큐베이터」에서 두 번이나 사내아기들은 영원의 길을 가버렸다.
그러니까 이번 아기만은 시골에서 낳도록 하라고 한 것은 무리가 아니었을 것이다.「미숙아」「인큐베이터」라는 단어는 항상 우울하고 전율처럼 부각되어오는 어휘들이었다.
심한 좌절감과 두려움 속에서 무리한 일은 삼가며 마지막 달을 보냈다. 의사의 권유대로 예정일을 10일 앞당겨 입원했을 때 아기의 성별보다도 내 품으로 돌아오기를 모진 진통 속에서도 얼마나 기원했던가.
『건강한 아들입니다.』그때 의사의 한마디를 나는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산후지만 눕고 싶지도 않았고 학창시절 나대로의 철학을 전개해가며 신의 존재를 부인하던 것과는 다르게 신에게 인지 또는 하느님에게 인지 무수히 감사를 드렸다.
지금 백일이 가까워 온 탓인지 초롱한 눈으로 무심코 보다 웃는 아기의 볼이 깨물고 싶도록 귀엽다.
유성은<주부·서울 마포구 공덕 동122의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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