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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낮아지고 원화 값은 강세인데 … 명품, 한국선 값 올려 '배짱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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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병행수입 전쟁이 가장 치열한 곳은 명품 시장이다. 가격차도 클 뿐 아니라 명품 브랜드 본사의 단속이 심해 물량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사장은 “명품 브랜드의 본고장인 유럽은 물론 미국도 최근의 경기 침체로 명품 소비가 줄어들면서 한국 등 불황에도 명품을 선호하는 아시아 시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중요한 시장’에 대한 대응방식은 서비스 강화 등이 아니라 잇따른 가격 인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달 들어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지갑·핸드백 등 40여 종의 가격을 2~20% 올렸다. 지난달 서프백 가격을 17% 올린 지 한 달도 안 돼서다. 지난해 2월 이후 다섯 번째 가격인상이다. 구찌도 올해 1·3월 두 차례 핸드백·지갑 등의 값을 올렸다. 까르띠에·불가리·티파니 등 비싼 제품은 억대에 이르는 고급 보석브랜드도 4~22%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명품 브랜드는 ‘글로벌 정책’ ‘원자재 값 인상’을 들어 가격을 인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격 인하 요인이 더 많다는 지적이다. 우선 관세가 줄었다. 2011년부터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서 의류(13%)·구두(13%)·가죽가방(8%)에 부여하던 관세가 단계적으로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7월부터는 핸드백에 부여하는 관세가 기존의 4%에서 2%로 절반이 됐다. FTA 체결 전(8%)과 비교하면 4분의 1이다. 명품 브랜드들은 “홍콩·스위스 등 EU 밖 국가에서 생산하거나 유통하는 경우는 관세 혜택을 못 받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제품을 프랑스에서 생산·선적하는 샤넬 역시 관세 혜택 이후에도 계속 가격을 올려왔다.

 또 하나는 환율이다. 원-달러 환율은 올 6월 1142원을 기록한 이후 하락만 거듭해 19일 현재 1056원이다. 즉 환율이 7.5% 떨어졌는데도 샤넬·페라가모 등은 오히려 핸드백 가격을 올린 것이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반영되는 데는 6개월 이상 걸린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명품 브랜드가 환율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올린 적은 있지만 환율이 떨어졌다고 가격을 내린 적은 없다.

 게다가 명품 브랜드는 백화점 입점 수수료도 낮다. 지난달 국정감사 때 새누리당 이진복 의원이 공개한 바에 따르면 샤넬·루이뷔통·에르메스 등이 백화점에 내는 수수료는 10%다. 35~40%에 이르는 국내 브랜드의 4분의 1 수준이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결국은 소비자의 선택”이라며 “그만큼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소비자가 선택하고 아니면 외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디자인의 제품을 해마다 1~2차례 가격을 올려도 “더 값이 오르기 전에 사는 것이 이득” “신제품을 사용하고 나중에 중고로 팔아도 손해가 없다”며 ‘샤테크(샤넬+재테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국내 소비자의 책임도 크다는 지적이다.

◆ 특별취재팀=최지영(뉴욕)·박태희(오사카)·구희령·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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