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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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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와 한겨레 사설을 비교·분석하는 두 언론사의 공동지면입니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窓)입니다. 특히 사설은 그 신문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가장 잘 드러냅니다.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닌 두 신문사의 사설을 비교해 읽으면 세상을 통찰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키울 수 있을 겁니다.

중앙일보<2013년 10월 30일자 30면>
국민참여재판,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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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을 놓고 ‘지나친 감성(感性) 재판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일부 사건의 배심원 평결에 대해 상식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개별사건을 이유로 제도 자체를 흔들려 하거나 드러난 문제점을 방치하는 것 모두 온당치 않은 태도다.

 시인 안도현씨에 대한 참여재판이 그제 전주지법에서 열렸다.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안씨는 당시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재판에서 배심원들이 전원일치로 무죄 평결을 했으나 재판부는 “재판부 견해와 일부 다르다”며 선고를 연기했다. 법조계에선 “선대위원장이었던 안씨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계속 올렸다면 비방 의도가 없었다고 봐야 할지 의문”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참여재판에선 박 대통령의 동생 지만씨에 관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된 주진우 시사인 기자 등에게 무죄 판결이 나왔다.

 우선 참여재판의 취지부터 돌아보자. 참여재판은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2008년 도입됐다. 시민의 건전한 상식을 형사재판에 반영하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다. 따라서 참여재판을 강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기조는 앞으로도 유지돼야 한다. 다만 재판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함으로써 제도의 완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번 두 재판 모두 정치적 사건이 대상이었다. 정치적 사건은 강도나 살인사건과 달리 배심원 성향과 재판 분위기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지역별로 정치 성향이 갈리는 상황에서 특정 성향이 과잉·과소 대표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안씨 재판의 경우 문재인 의원이 방청석에 앉음으로써 배심원들에게 ‘정치 재판’ 인상을 줬다는 비판에 일리가 있다.

 현행법은 피고인이 참여재판을 신청하면 재판부가 실시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배심원들이 직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지 못할 염려가 있거나 참여재판이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될 때에는 배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법원은 이런 법 취지에 따라 선거법 등 정치적 사건에 대해선 보다 엄격하게 배제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재판 진행에 있어서도 배심원들이 방청석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평결 방식을 단순 다수결에서 가중 다수결(4분의 3 이상)로 바꾸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검찰은 재판 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 참여재판은 법 감정, 즉 감성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주 기자 재판에서 검찰 측은 난해한 판례와 법 조항을 나열했다고 한다. 검찰은 배심원들의 감성을 탓할 게 아니라 배심원 선정 절차에 힘을 쏟고,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해야 한다.

 참여재판을 사법 개혁의 이정표로 세우기 위해선 판사·검사·변호사, 시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이번 논란이 제도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한겨레<2013년 10월 30일자 35면>
안도현씨 사건 '7:0 무죄' 평결 존중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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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시인 안도현씨가 28일 전주지법에서 14시간 넘게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배심원 7명 전원일치로 무죄 평결을 받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일부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며 선고를 연기했다. 현행법상 배심원단의 평결은 권고적 효력만 갖고 있어 판사가 이와 달리 판결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배심원단 의견과 다르게 판결하는 사례는 통상 7~8%에 불과하고 90% 이상은 배심원단 의견을 따르는 것에 비춰 보면 재판부의 이번 판단은 이례적이다.

 재판부는 안씨 사건의 선고를 연기하면서 “배심원과 재판부의 판단과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법관은 헌법과 법률, 직업적 양심에 따라 상충점이 없는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죄를 선고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그러나 검찰의 기소 내용과 변호인의 변론 취지 등을 종합해 보면 과연 배심원의 평결 내용을 뒤집을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안씨는 지난해 12월 10일부터 11일까지 자신의 트위터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보물인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소장하고 있거나 도난에 관여했다는 취지의 글을 17차례 올렸다는 이유로 선거법상의 허위사실공표와 후보자비방죄로 기소됐다.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 쪽은 안중근의사기념관이 2001년 간행한 『대한국인 안중근』 등 여러 건의 문헌과 도록에 안중근 유묵의 소장자가 ‘박근혜’로 기록돼 있다는 사실을 증거와 함께 제시했다. 또 문화재청의 자료와 신문 보도도 제시하며 트위터에 올린 내용이 허위사실로 단정할 수 없고 비방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7대0의 평결 결과를 보면, 시각자료와 함께 일목요연하게 무죄 주장을 펼친 변호인 쪽 주장이 박 후보에 대한 서면조사조차 않은 채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한 검찰에 비해 더 설득력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에 대한 허위사실공표 등 혐의로 기소된 김어준·주진우씨에 대해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단은 1대8 혹은 4대5로 유·무죄 의견이 갈렸으나 재판부는 평결 내용을 존중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 뒤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감성적 판단 운운하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 이번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박근혜정부가 검찰 장악을 위한 고삐를 죄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하는 마당에 법원마저 이런 기류에 흔들리면 안 된다. 재판부는 국민만 바라보고 그야말로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길 기대한다.

논리 vs 논리
감성 판결 문제점 보완 지적 … 제도의 취지 훼손 방지에 초점

국민주권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추세는 전 세계적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한 나라일수록 국민주권 보장을 위한 사회적 인식과 틀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일반적으로 국가 권력과 제도는 통치의 효율성을 명목으로 국민 개개인의 인권과 주권을 보장하는 데 소홀할 우려가 높다. 따뜻하고 섬세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크고 작은 국민주권 침해의 실체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이러한 국민주권의 기본 원리를 재판에 실현시키고자 한 제도가 바로 국민참여재판이다.

 그런 만큼 국민참여재판 자체의 의미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번 안도현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논란을 다룬 중앙일보와 한겨레 두 신문사의 사설도 모두 이점에서는 같은 입장이다. 제목부터 중앙일보는 “국민참여재판,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로, 한겨레는 “안도현씨 사건 ‘7:0 무죄’ 평결 존중하길”로 달아 국민참여재판 제도에 대한 동의를 전제하고 있다.

 다만 이번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논쟁점을 바라보는 기본 시각과 대책을 제시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두 신문이 약간의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요약하면 중앙일보는 이러한 개별 사건을 이유로 국민참여재판 제도 자체를 흔들어서는 안 되지만,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에 비해 한겨레는 국민참여재판을 둘러싼 이번 논란에 대해 일부 보수층이나 현 정권의 정치적 영향력을 의심하는 입장이다.

 국민참여재판을 둘러싼 논란 중 하나는 배심원들의 판결이 지나친 감성에 의존한 여론재판화에 있다. 특히 정치적 사건의 경우는 배심원들의 정치적 성향에 의해 판결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다. 안도현 시인에 대한 배심원 전원 일치 무죄 판결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논란도 이와 같다. 배심원 7명 전원일치로 내린 무죄 평결에 대해 재판부가 선고를 연기하면서 배심원과 재판부의 판단과 견해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법관의 직업적 양심에 따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중앙일보는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정치적 사건의 경우 배심원의 성향과 재판 분위기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과 특히 지역별로 정치 성향이 갈리는 상황에서 특정 성향이 과잉 또는 과소 대표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한겨레는 현행법상 배심원단의 평결은 권고적 효력만 가지고 있어 판사가 이와 달리 판결할 수는 있으나 그동안 배심원단 의견과 다르게 판결하는 사례는 통상 7~8%에 불과하고 90% 이상은 배심원단 의견에 따르는 판결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배심원단 전원일치 무죄 평결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국민참여재판 과정에서의 논란을 두고 중앙일보는 ‘선거법 등 정치적 사건에 대해서는 보다 엄격하게 배심원 배제 여부를 판단해야 하며, 재판 진행에 있어서도 배심원들이 방청석 반응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등의 보완책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평결 방식을 단순 다수결에서 가중 다수결(4분의 3 이상)로 바꾸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개선책도 내놓고 있다. 이에 반해 한겨레는 배심원 전원 무죄 평결의 정당성 강조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이에 대한 재판부의 이견 표명을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주려는 보수층의 의도된 결과가 아닌지를 우려’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검찰 장악을 위한 고삐를 죄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하는 마당에 법원마저 이런 기류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즉 중앙일보는 현 국민참여재판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춘 데 반해 한겨레는 국민참여재판의 본래 취지가 훼손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보다 강조한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김기태 호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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