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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화재의 재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팔레스·호텔」에서 25일 새벽 또 큰불이 나,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중상을 입은 불상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작년 「크리스머스」에 있었던 대연각「호텔」화재 후 꼭 3개월만의 일로서 다시 한번 대연각「호텔」참사의 쓰라린 기억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번 「팔레스·호텔」의 참사야말로 지난번의 대연각「호텔」화재의 교훈을 살렸던들 능히 예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당국과 「호텔」업자들의 건망증을 나무라지 않을 수 없다.
「팔레스·호텔」은 지난 1월5일의 방화시설점검에서 ①4층 이상의 비상계단시설미비 ②방화구획미비 ③「보일러」실과 변전실의 비상문과 방화문 미비 ④「프로판·개스」사용 등 4개항목이 지적되어 2월까지 개수토록 지시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호텔」측은 2월말까지의 시설개수시기를 연기 신청해 오던 중 이와 같은 참사를 빚고 만 것이다.
이번 교훈을 살려서라도 서울시당국은 또다시 이런 참사의 재연을 막기 위해 다시 한번 기왕에 내린 고층건물에 대한 개수지시의 이행상황을 긴급히 「체크」 해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 화재의 경우에도 각층 복도에 8·2ℓ들이 전도식 포말 소화기가 2개씩이나 비치되어 있었으나 종업원들이 방화훈련을 받지 않아 하나도 활용치 못했다는 실정도 밝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객실과 복도천장에는 화재자동감지기가 설치되어 있었으나 이것도 작동되지 않았다 하며, 각층 복도 벽에 설치돼있던 소화전에도 「호스」가 연결돼 있지 않아 불이 난 후에도 이용할 수 없었다고 하니 「호텔」측과 소방당국의 무성의가 이번 참사를 빚은 것이라 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호텔」측의 불찰과 무성의는 결코 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대연각「호텔」의 참사를 거울삼아서라도 가연성 「카피트」등의 철거는 즉시에 이행했어야 했을 것이요, 또 일단 유사시 인명구조에 결정적 구실을 하는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출입문도 항상 개방상태에 있어야 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비상계단으로 통하는 문에 자물쇠가 잠겨 있어 종업원이 몇 사람 희생되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경찰과 서울시는 각 가정의 철책 없애기 운동을 벌이고 있는 터에 다수인명의 안전을 좌우하는 「호텔」의 비상계단에까지 자물쇠를 잠가두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서 서울시나 소방당국에 요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매번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만 법석을 떨지 말고, 좀 더 꾸준하고 계획성 있는 소방대책을 강구해 달라는 것이다. 또 그들이 고층건물에 대한 방화진단을 한다하면 꼭 4층 이상만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방화진단에 관한 한, 고층건물의 모든 시설에 대한 철저한 점검을 실시하고 이에 의거한 시설개선보수조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당국은 다시는 이 같은 창피스런 참변을 겪지 않도록 차제에 가혹하리만큼 철저한 방화진단을 다시 한번 단행, 그에 따른 시설개수지시의 엄격한 준수를 독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에 특히 강조해야할 것은 모든 도시건축물을 설계·시공하는 건축업자들의 양심문제이다. 아직 정확한 화인은 밝혀진 바가 없으나, 이번 「팔레스·호텔」의 화재도 그 발화현장의 「콘센트」가 타고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어쩌면 건축시공당시부터 전기공사의 부실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혐의를 짙게 하고 있다. 특히 다수 인을 수용하는 고층「빌딩」의 건축에 있어서는 그 구조자체뿐만 아니라, 전기배선 등 공사의 세부적인 면에 있어서까지 양식과 양심의 문제가 다시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근대화를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서 외국인을 방화시설조차 변변치 않은 「호텔」에 유치하여 사망케 함으로써 관광한국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나라전체의 수치를 사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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