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항의 내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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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편전쟁이 끝나자 그 책임을 도맡은 것은 「찰즈·엘리어트」영 해군대령이었다.
『만일에 그때 「엘리어트」가 능란해서 그런 실수만, 저지르지 않았었다면, 우리가 원하던 것은 전부 차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딱하게도 그는 중국에서도 제일 보잘것없는 땅을 획득하려 신명을 올린 것이다.』
이렇게 「빅토리아」여왕은 말했었다. 당시의 외무장관 「파머스턴」도 「엘리어트」대령에게 써보내기를 『귀하는 명령을 따르지 않고, 지휘를 태만히 했다…. 그 결과 획득하도록 명령받은 것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조건을 까닭 없이 수락해 버렸다. 귀하는 향항을 양도받았으나 그것은 집 한 채 없는 벌거숭이 섬이다.』
그러나 중국 측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할양에 책임이 있던 기선의 막대한 개인재산은 전부 몰수당하고 「티베트」에 추방되었다.
『광동에 도착한 다음에 기선은 도적이나 다름없는 양귀의 책략에 걸려들었다.… 향항은 중요한 섬이다. 그런 섬을 내놓은 것은 그에게 전혀 애국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황제는 적어보냈다.
현재 향 항은 영국여왕의 소유로 되어있다. 엄격히 따진다면 1898년7월1일을 기점으로 해서 만99년에 해당하는 날보다 3일전까지 차용권을 갖고있다.
3일간의 여유가 있는 것은 그 정도면 토지의 원소유자 곧 중국이 땅을 되찾으러 오기 전에 짐을 싸고 이사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법 이론상으로 따진다면 조차지가 반환되는 1997년까지는 중공은 향항 및 「신계」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다. 아직도 꼭 25년이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데 중공이 최근에 「홍콩」과 「마카오」의 영유권을 다시 주장하고 나섰다. 예상 못하던 일은 아니다.
16년 전의 일이다. 영국이 중공을 승인하자 주은래는 당시의 향항 총독 「알렉산더」경에게 향항에 북경의 외교대표부를 설치할 용의가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알렉산더」경은 이 제안을 다음과 갈이 재치 있게 거부했다. 『그렇게 된다면 제가 먼저 사임하겠습니다. 향항에는 두 총독이 들어갈 방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마카오」나 향항이 앞으로 25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는지 지금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에 중공 측에서 이곳들을 되찾을 생각은 물론 없다.
이곳 중국인들을 먹여 살릴 것도 문제이지만 이 국제시장들을 중심한 꿀단지와 같은 외화 「루트」가 봉쇄될 것도 큰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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