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양심」의 백년아성은 무너질 것인가 권좌 흔들리는 「타임스」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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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런던=박중희특파원】『영국의 양심』이 뒤바뀔지도 모른다. 「런던」의 「타임스」라면 이 나라의 양심을 대표해 오는 것쯤으로 자처해 오던 것이 경쟁지인 「가디언」지 때문에 입장이 아주 거북해졌다는 이야기다.
지난 몇 해 동안의 형편으로 보면 「타임스」의 백년아성이 얼마안가 허물어질 형편에 있다. 이의 첫 징후가 발행부수에서 드러나고 있다.
최근의 공식발행부수를 보면 2년 전인 69년만해도 「가디언」지를 14만 부나 앞섰던 것이 70년에는 7만 부, 71년 말에는 「타임스」 33만9천 부, 「가디언」 33만6천 부로 3천부의 차이로 좁혀졌다.
올 여름이 되기 전에 「가디언」이 「타임스」를 앞지르는 것은 기적이 없는 한 기정사실인 듯이 보인다. 이는 「타임스」지의 판매부수가 줄어들기 때문이 아니다. 「가디언」지가 더욱 잘 팔리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가디언」지의 발행부수는 16%나 늘어났다.
이런 숫자만으로야 굳이 이야깃거리로 삼아야 할 것은 없다. 문제는 「타임스」지가 즐겨 쓰는 표현을 빌자면 영국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사람들(People that matter)』즉 일정한 지식수준에 올라있는 사람들의 동태인 것이다.
영국사회 안의 가장 알맹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의 취향이 변해가고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타임스」와 「가디언」지 모두 불편부당의 초연한 입장에서 영국의 양식을 대변한다지만 「가디언」의 경우 훨씬 진보적인 입장에 서있다. 이는 물론 「리버럴」한 전통의 틀 안에서의 이야기다.
이런 「가디언」지가 더 잘 팔리게 됐다고 해서 곧장 여론조성 층의 「무드」가 급진화 됐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들 계층에서 훨씬 개혁주의적이거나 「조반적」인 기미까지 보이는 지적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다.
이들은 사회각계의 예비군으로 성장해온 젊은층에 의해 주로 대표된다. 「가디언」지는 이들의 수요를 충족시킴으로써 붓수를 착실히 확정해왔다.
「타임스」는 아직도 1년에 1백만 「파운드」의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는 소식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타임스」가 도산할 염려는 없는 것 같다. 이를 지탱하고 있는 「톰슨」계의 재력도 재력이지만 끼니를 몇 차례 거르더라도 「타임스」없이는 못산다는 독자들이 쓰러지도록 내버려 둘리는 없기 때문이다.
「타임스」는 앞으로도 계속 일정한 기존수요는 끄떡없이 채워나가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이제는 「타임스」지만이 영국의 양식을 유일하게 대변한다고는 에누리 없이는 말할 수 없는 형편이다.
「타임스」로서는 『체질개선』을 하게되는 약간의 계기가 마련된 셈이다. 소위 체질개선이란 신문독자라는 세계에서만도 사회적 기존수요보다는 신진수요를 충족시키는데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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