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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논쟁

게임중독 문제 해결할 치료·관리 체계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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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게임중독법(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게임을 술·마약·도박 등과 함께 관리토록 하는 게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의 골자다. 이를 놓고 “치료가 꼭 필요한 중독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과 “게임이 문화 콘텐트라는 측면을 무시하는 것” 이란 반론이 엇갈리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기선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기획홍보실장)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은 중독 전반의 관리에 관한 기본법 성격을 지닌 법률이다.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게임산업규제법이 아니다. 물론 중독 예방 차원에서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선언적 근거가 이 법안에 없는 건 아니지만 게임의 생산·유통 등은 이미 시행 중인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등으로도 제한할 수 있다.

 행정적 제한이나 처벌만으로는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규제와 제한을 넘어 보건복지학적 모형에 근거한 포괄적인 치료·재활 체계를 갖춰야 한다.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은 이러한 보건복지 시스템 구축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선진국은 중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미 많은 예산과 인력·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문 인력이나 시설이 매우 빈약하다. 그나마 있는 관련 자원이나 규정도 여러 부처에 산발적으로 존재하고 대책도 행정적 제한에 그친다. 중독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행정관리체계가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다. 중앙정부의 중독에 대한 책임과 관심, 범 부처별 의견 조율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관련 법률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게임중독이 이번 법률안에 포함된 것은 도박처럼 물질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의 행위도 중독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게임중독은 무엇을 많이 좋아하고 몰입하는 현상을 은유하고 비유하는 용어가 아니라 엄연하게 현상학적으로 존재하는 신경과학적 변화를 표현하는 단어다. 특히 확률적으로 가능성이 작은 예기치 않은 보상(rewards)을 기대하도록 만들면 중독이 심화된다.

 실제로 물질중독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중단하지 못하고 심한 갈망과 금단 증상을 보이며 중독에 따른 심각한 사회적 기능의 황폐화를 동반하는 게임중독 환자가 존재한다. 술을 가까이 하는 두 부류의 사람을 예로 들자. 술을 빚는 인간문화재는 기분 좋게 술을 즐기는 것이지만 단순 알코올중독자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환자의 중독에 대한 생물학적 소양이나 사회문화적 유발인자가 어찌됐든 결국 중독 환자는 뇌기능의 변화가 일어난 상태다. 자발적으로 중독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이번 법률안은 게임을 하는 대다수 사람의 게임을 할 권리를 규제하는 법이 아니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는 법이 아니라 스스로 조절 안 되는 중독 환자들을 돕고 그 가족들의 고통과 부담을 경감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한 법이다. 일부 주장처럼 게임과 마약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다. 중독의 신경과학적 병태생리가 동일하고 심리사회적 치료의 기법도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법에서 다루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산업과 게임산업 선진국이다. 신기술 발전에 동반되는 역기능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의학적으로 분명하게 중독병리를 일으키지 않는 게임이라면 이 법과는 관계가 없다. 현재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등 중독 문제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은 천문학적이고 더 늘어날 전망이다. 미래 인적 자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중독의 예방과 치료는 필요하다.

 선진국 사례처럼 중독은 미래 우리 사회의 중요한 보건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이제 규제와 제한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예방과 치료, 재활 그리고 포괄적 관리를 위한 ‘기본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선완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기획홍보실장)
일러스트=박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