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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32조 가스공사 신사옥 2900억 … 수영·축구·농구·테니스장 다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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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천시 옹진군에 위치한 영흥화력발전소의 직원용 비상숙소 내·외부 모습. 숙소에는 1000만원짜리 스파 욕조, 방수 TV를 갖춘 화장실 등이 있다. [사진 JTBC]
벽면은 대리석이며 거실 천장은 수입 목재를 사용했다. 이 건물은 한국전력이 출자한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이 지었으며 건설 비용으로 총 4채에 20억원을 사용했다. [사진 JTBC]

부채 32조 한국가스공사가 내년 9월 옮겨갈 대구 혁신도시 본사 부지는 현재 경기도 사옥보다 4배 넓다. 수영장·축구장·테니스장·농구장이 딸린 새 사옥을 짓는 데 2900억원이 들어간다. 호화 청사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가스공사는 “편의시설을 개방해 지역 주민과 함께 이용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며칠 뒤 가스공사 건물이 국가보안목표시설로 지정돼 있다는 점이 알려졌다. 모두가 주민은 이용하기 어렵고 직원만 쓸 수 있는 시설인 것이다. 전하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데도 매년 9억원의 관리비가 들어가는 수영장을 짓는 것은 이기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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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에 대한 과도한 투자는 공기업 방만 경영의 대표적 사례다. 전남 광양시에 있는 19층짜리 ‘월드마린센터’도 호화 사옥이란 지적을 받았다. 마린센터는 여수항만공사가 451억원을 들여 지은 전체면적 1만8000㎡ 빌딩이다. 그런데 완공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체의 11%가 비어 있다. 그나마 임대료를 깎아주면서 공실률을 낮춘 게 이 정도다. 그래도 빈 자리는 현재 직원용 탁구장으로 쓰이고 있다. 김우남 민주당 의원은 “일부 공간은 무상 임대까지 해줬다”고 비판했다.

 방만 경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지역난방공사는 2012~2013년 아홉 차례 이사회를 특급호텔에서 열었다. 2조9600억원의 빚을 안고 있는 회사가 자체 회의실을 놔두고 호텔을 택한 것이다. KOTRA(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도 지난해 중국 칭다오(靑島)와 시안(西安)에서 한 번씩 이사회를 개최하는 데 7500만원을 썼다. 이사회 장소는 인터콘티넨털·소피텔 등 고급 호텔이었다. 한국가스기술공사 역시 2011년~올해 9월 총 26회의 이사회 중 10차례를 1인당 최고 17만원까지 드는 식당에서 열었다. 지난 국감에서 이를 지적한 전하진 의원은 “공공기관의 부실 재무 문제를 국가가 해결해 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겉으로만 비상경영을 외치며 공공요금 인상을 주장하는 공기업에 어떤 국민이 동의하겠느냐”고 개탄했다.

 정부로부터 ‘부채 상위 기관’으로 지목된 12곳의 총 부채는 349조원에 이른다. 전체 나랏빚의 3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특히 토지주택공사(LH)의 부채는 138조원으로 이날 조찬간담회에 모인 기관 중 단연 많다. 부채비율이 464%, 하루 이자만 122억원이다. 일반 기업은 부채비율이 200%가 넘으면 위험 수준으로 분류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도 최근 직원 자녀의 특성화 중학교·특수목적고교 학비 전액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등 복지 혜택이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LH가 자녀 학비 지원금 상한액을 일반 공무원의 세 배로 설정했기 때문에 이 같은 지원이 가능했다.

 공공기관 부실의 근본 원인이 정부에 있다는 반론도 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지난 정부에서 국책 사업에 필요한 예산의 상당 부분을 회사에 부담시켜 부채가 7조원이나 늘었다”며 “정부가 시킨 일을 하느라 빚이 많아지면, 다음 정부가 들어서서 왜 방만 경영을 했느냐고 책임을 묻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부문노동조합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공공기관의 과다한 부채 원인으로 방만 경영을 내세우며 그 책임을 공공기관 임직원에게 떠넘기는 행태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며 “그동안 4대 강·보금자리주택·해외자원개발 등의 사업을 공공기관에 떠넘기고,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한 것이 부실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반박했다. 한성대 이창원(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은 ‘정권이 시킨 일을 하느라 부실이 심해진다’는 이유로 자체적인 방만함까지 덮으려는 경향이 있다”며 “공기업을 감독하는 기획재정부 등 주무 부처에도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김동호·최준호·이정엽·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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