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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등 닮은 빌레, 뭔가 했더니 제주 스타일 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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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9시. 제주올레 걷기축제 열기가 뜨거운 제주시 애월읍 고내포구에 학생 34명이 모여들었다. ‘롯데면세점과 함께하는 제주올레 청소년 리더십 아카데미’(이하 제주올레 청소년 캠프)에 참가한 중문초등학교와 중문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천 명이 올레길을 걷는 모습을 보고 학생들은 놀란 표정이 역력했다. ㈔제주올레(이사장 서명숙)가 지난 2~3일 서귀포 중문지역 초등·중학교 학생들 중 34명을 뽑아 청소년 캠프를 열었다. 제주올레 축제에 참가해 올레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그 사진으로 나만의 달력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이 1박2일 동안 진행됐다. “일종의 조기 교육 같은 거예요. 저는 쉰 살이 다돼서야 내 고향 제주가 아름답다는 것을 느꼈는데, 우리 아이들은 좀 더 일찍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서명숙 이사장의 말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제주 아이들도 처음 보는 돌염전

고내포구는 2일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제주올레 걷기축제에 참가한 올레꾼 2000여 명이 작은 포구마을을 가득 메웠다. 애월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올레꾼을 격려했다. 올레꾼 중에는 엄마·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들도 많았고, 외국인도 제법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주변을 살폈다. 제주올레를 찾아 수많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날아오지만, 정작 제주의 아이들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제주에 사는 아이들이 오히려 제주올레를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이날 학생들이 걸은 길은 제주올레 16코스 시작점 고내포구에서 구엄리 돌염전까지 약 5㎞ 구간이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걷기에 앞서 “올레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꿈을 생각하고, 제주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껴보자”고 짧게 인사했다. 오전 10시쯤 본격적으로 제주올레 탐방이 시작됐다.

“서울은 온통 회색빛인데, 제주도에는 무슨 색이 가장 많지요?”

“녹색, 파란색, 주황색, 갈색이요.”

“그렇지. 제주바당(바다)은 지역마다 색깔이 전부 달라요. 우리 고장의 아름다움을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해요.”

서 이사장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한참 바다를 바라봤다. 다락쉼터를 지나자 길은 바다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까만 현무암 무더기 위로 시멘트를 깔아 길을 냈는데, 파도가 현무암 위로 부서졌다. 캠프 일정 동안 휴대전화를 보지 않기로 약속해서인지 아이들은 휴대전화 대신 친구들에게 집중했다.

“창현이는 우리 학교 전교 1등이고, 동수는 영어를 잘해요.”

“그래? 그럼 동수가 통역 좀 해주면 되겠다. 올레길에 외국인이 참 많거든.”

종착점인 구엄리 ‘돌염전’에 도착했다. 구엄리 앞바다에 있는 바위는 마치 거북이 등껍질 같이 넓고 틈이 나 있었다. 넓은 바위를 제주말로 ‘빌레’라고 한다. 빌레 위에 찰흙으로 칸막이를 만들고 그 안에 바닷물을 채운 뒤 물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소금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생산한 소금을 ‘돌소금’이라 부른다. 아이들은 제주에 살면서도 돌염전은 처음 봤다며 신기해했다.

사진 강의 뒤엔 나만의 달력 만들기

이번 청소년 캠프의 주제는 사진이었다. 아이들이 1박2일 동안 올레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오리고 붙여 ‘나만의 2014년 달력’을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사진 강의를 한 주인공이 본지의 신동연 선임기자였다. 신 기자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많이 찍어라”며 “공통된 소재를 넣고 찍는 것도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아이들 대부분은 카메라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들고 왔다. 디지털 카메라를 챙겨 온 학생은 강윤영·원지애양 두 명이었다. 원양은 “엄마와 함께 제주올레 7코스와 11코스를 걸어본 적이 있다”며 “오늘 사진을 잘 찍어 가서 엄마한테 자랑할 거다”고 야무지게 말했다.

아이들은 시작부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요트가 떠 가는 바다, 같이 온 친구가 장난치는 모습, 올레꾼과 함께 걷는 강아지. 길을 걸으며 만난 풍경을 하나하나 곱씹듯이 사진에 담았다. 사진 찍기에 푹 빠져 올레길을 걷는 시간은 한없이 지체됐다.

구엄리 돌염전에서 걷기 일정을 마친 아이들은 물메초등학교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16코스 9㎞ 지점에 있는 물메초등학교에는 이미 수많은 올레꾼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물메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으로 구성된 ‘요망진 아이들’ 팀이 너른 운동장에서 태권도 시범, 제주어 동요, 연극으로 꾸민 제주어 배우기 공연을 펼쳤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신동연 기자의 사진 강의가 시작됐다. 식사 후 한참 졸릴 시간인데도 아이들은 집중해서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듣고 난 아이들의 태도가 사뭇 진지해졌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신 기자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을 들이밀며 조언을 구했다.

오후 4시 다시 축제 현장으로 돌아왔다. 올해 제주올레 걷기축제 폐막식이 열리는 광령초등학교로 이동해 광령리 부녀회에서 만들어준 주먹밥·몸전 등을 먹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가 진행하는 치유 나눔 콘서트에 참석했다.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아이들에게서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후 일정을 모두 마친 아이들은 무릉리 생태문화 체험골로 이동했다. 짐을 푼 학생들은 큰 교실에 모여 하루 동안 찍은 사진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자신이 미처 놓친 풍경을 찍은 친구에게 질문도 하고 잘 찍은 사진은 서로 자랑하면서 달력에 쓸 사진을 골라냈다.

걷고 체험하고 … 애들이 달라졌어요

이튿날 아침 아이들은 일찍 눈을 떴다. 오전 8시30분 아침밥을 든든히 먹은 뒤 무릉리 생태문화 체험골 강영식(52) 촌장과 함께 11코스에 있는 무릉곶자왈로 출발했다.

나뭇가지에 달린 수많은 잎이 하늘을 가리고 바닥에는 고사리가 자라나 숲 전체가 온통 녹색이었다. 숲을 걷다 보니 특이한 나무가 계속 눈에 띄었다. 보통 나무는 굵은 줄기가 어느 정도 자란 다음 가지를 치는데, 이 나무는 밑에서부터 가지가 나와 있었다. 이런 나무를 ‘맹아림’이라고 부르는데, 줄기가 채 자라기도 전에 베어버렸기 때문에 이 모양으로 생겼다.

“돌뱅이다 돌뱅이!”

길을 가다 아이들이 갑자기 멈춰 서 땅을 바라보고 소리쳤다. 10㎝ 정도 되는 민달팽이가 길을 막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민달팽이를 옷 벗은 돌뱅이라고 불러요.”

중문중 1학년 1등이라는 원창현군이 뭍에서 온 기자들에게 설명을 해줬다.

숲에서 빠져나오자 너른 벌판이 나타났다. 무릉2리에 사는 김성종(71) 할아버지 부부가 ‘짚줄’을 만들고 있었다. 제주에서는 겨울이 되면 바람이 강하게 불기 때문에 새끼줄을 꼬아 지붕에 얹어 묶는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도 생경한 광경이었다. 학생들이 직접 해보겠다며 서로 아우성쳤다. 숲길은 1.5㎞로 짧았지만 이래저래 2시간이나 걸렸다.

마지막 체험인 달력만들기가 시작됐다. 전날 저녁에 뽑은 사진을 달력에 붙이고 다양한 색깔의 펜으로 달력을 꾸몄다. 1박2일 동안 함께 걸은 친구의 생일을 물어 달력에 표시하고, 집에 전화해 할아버지·할머니의 생일과 기념일을 확인하기도 했다.

오후 2시 수료식을 끝으로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수료식에는 서명숙 이사장과 롯데면세점 이선화·이성철 점장 등이 참석했다. 이번 제주올레 청소년 캠프를 후원한 롯데면세점은 이르면 올 연말부터 제주도 내 롯데면세점에서 ‘간세’ 등 제주올레 기념품 등을 판매한다.

“아이들이 먼저 와서 반갑게 인사하더라고. 내가 뭐라고 했어. 1박2일 지내고 나면 분명 달라진다니까.”

서 이사장이 반색하며 말했다.

시상식도 열렸다. 최고의 사진을 찍은 이시훈군, 가장 예쁘게 달력을 꾸민 홍가예양, 창의력이 돋보이는 달력을 만든 이지홍군이 제주올레 상징물인 간세 인형을 선물로 받았다. 롯데면세점의 이선화(46) 제주점장은 “청소년이 이번 캠프를 통해 꿈과 희망을 갖고 올바른 방향으로 자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축하 인사를 전했다.

글=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제주올레 1박2일 청소년 캠프 가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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