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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그리면 형상화되는 3D 프린팅 펜 … 시작은 황당한 용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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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4일 서울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테크플러스 2013’에 참석한 맥스웰 보그 ‘우블웍스’ CEO가 ‘3두들러’로 사람 형상의 모형을 만들고 있다. 3두들러는 그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3D 프린팅펜이다. 바닥에서부터 허공으로 그림을 그리듯 펜을 움직이면 펜촉에서 나온 액체 플라스틱이 바로 굳으면서 3차원의 형상이 만들어진다. 왼쪽의 에펠탑은 그가 3두들러를 이용해 만든 에펠탑 모형이다. [김경빈 기자]

펜을 바닥에서부터 허공으로 움직이면 3차원의 물체가 만들어지고 손동작만으로 하늘을 나는 무선 헬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머릿속의 상상이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14일 서울 세종대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내 최대의 지식콘서트 ‘테크플러스 2013’에서 펼쳐진 명사들의 프레젠테이션 중 일부다.

 ‘creativity@technology 창의적 기술, 새로운 세상’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는 인간과 문화가 연계된 ‘미래 창의기술’을 즐기는 지식의 축제였다. 행사장 1000여 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각 분야에서 혁신을 이끄는 명사들의 강연에 고개를 끄덕이고 손뼉을 치며 지식을 공유하는 데 동참했다.

 본격적인 행사의 개막은 세계 최초로 ‘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의 개념을 정립한 에릭 드렉슬러가 열었다. 그는 특별강연에서 “원자·분자를 벽돌처럼 쌓아 우리가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시대가 곧 온다”며 “장소·시간 제약을 줄일 수 있는 이런 나노기술을 통해 제조업의 혁명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모바일을 넘어 웨어러블’이라는 주제로 열린 첫 번째 세션에서는 최첨단 웨어러블(착용할 수 있는) 기기의 향연이 펼쳐졌다. ‘탈믹랩스’의 애런 그랜트 설립자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장면을 현실로 가져왔다. 그는 근육의 전기신호를 인식해 이를 컴퓨터에 무선으로 전달하는 입력장치인 ‘마이오(MYO)’를 개발한 인물이다. 키보드·마우스가 없어도 마이오를 손목에 차고 특정 패턴대로 움직이면 컴퓨터의 프로그램을 재생하고 각종 장비를 움직일 수 있다. 그는 이런 ‘모션 컨트롤’을 바탕으로 무선 헬기를 조종하는 시연을 선보여 관객들의 갈채를 받았다. 그랜트는 “웨어러블 기기가 성공하려면 삶과 연결되는 자연스러움이 최우선”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사람의 동작을 정확히 잡아내고 이를 인식해 분석한 뒤 컴퓨터에 이를 전달하는 3단계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리다 이옌가 ‘미스핏’ 최고기술책임자는 헬스 웨어러블 기기인 ‘미스핏 샤인’을 소개했다. 동전만 한 크기의 기기를 목에 걸거나 옷에 붙이면 하루 운동량과 칼로리 소모량, 운동 패턴 등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준다. 그는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을 이용한 혈당측정기를 개발한 ‘아가매트릭스’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옌가는 “환자들이 혈당을 측정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봤더니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다는 것을 첫손에 꼽았다”며 “‘언제나 내 주머니에 있는 의료진단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환자들의 희망을 현실에 옮긴 게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는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조언도 건넸다. 이옌가는 “자본을 유치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누구와 함께 일을 시작하느냐는 것”이라며 “첨단기술 기업도 이젠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심리학과 디자인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창의적 생각을 현실로’라는 주제로 세계의 기술 트렌드를 소개했다. 맥스웰 보그 우블웍스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이 개발한 세계 최초의 3차원(3D) 프린팅펜인 ‘3두들러’의 기능을 직접 시연했다. 그가 바닥에서부터 허공으로 그림을 그리듯 펜을 움직이자 입체적인 그림이 완성됐다. 버튼을 누르면 펜촉에서 액체 플라스틱이 흘러나오면서 바로 굳어버리기 때문에 3차원의 형상을 자유자재로 그려낼 수 있다. 보그는 “3D프린터의 헤더를 기계에서 떼어내 들고 써보자는 황당한 생각에서 제품개발이 시작됐다”며 “조그만 아이디어라도 이를 실천하는 용기가 미래를 이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올해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선정한 ‘35세 이하의 글로벌 혁신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하오 리 서던캘리포니아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CG(컴퓨터그래픽)의 발전 과정과 미래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그는 “CG는 실제 현실과 디지털 세계를 밀접하게 연결하는 도구”라며 “게임·영화에 국한되던 CG 기술이 이젠 암세포의 위치를 추적하거나 옷 치수를 재는 데 활용되는 등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들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강연을 시작한 ‘롤리’의 롤랜드 램 CEO는 눈이 아닌 귀를 자극하는 강연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전자피아노 ‘시보드 그랜드’를 직접 연주해 딱딱했던 강연장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꿨다. 고무처럼 탄력 있는 건반을 장착한 시보드 그랜드는 어떤 식으로 건반을 누르느냐에 따라 기타·바이올린 같은 음색도 구현할 수 있다. 램은 “지금까지 정보기술(IT)이 시각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면 앞으로는 청각·촉각에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라며 “IT 기기가 몸의 일부분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면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 램은 “기술력이 뛰어난 한국인들과 오랫동안 함께 일해왔다”며 “IT 제품 제조에도 장인정신이 필요한데 한국은 이것이 가능한 국가”라고 덧붙였다.

 정만기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반실장은 “국내총생산 3만 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한국에도 이런 혁신기술이 많이 나와야 한다”며 “인력·기술개발·자금지원은 물론 제도 개선을 통해 고급 두뇌가 역량을 피우게끔 도와주겠다”고 강조했다. 강연이 끝난 후에는 ‘산업 기술이 인간·사회와 함께 발전하려면’이라는 주제로 강연자들과 KAIST 김대식 교수, 홍익대 나건 교수, 정재훈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등이 토크쇼 형식의 대담을 진행했다. 오전부터 이날 행사에 참석해 강연을 들은 ‘산업통상자원R&D전략기획단’ 서승범 전문위원은 “첨단 IT뿐 아니라 글로벌 명사들이 아이디어를 얻게 된 계기, 창업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접할 수 있어 유익했다”고 말했다.

글=손해용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테크플러스
‘테크’는 기술(technology)·경제(economy)·문화(culture)·인간(human)의 앞 글자를 딴 말로 이 네 가지 요소의 결합을 상징한다. 이들이 합해짐으로써 경계를 뛰어넘고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자는 의미의 포럼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중앙일보가 손잡고 2009년 처음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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