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눈사람' 공효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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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새벽 공효진(23)은 대관령으로 떠났다. 다음날 종영하는 MBC 수.목 드라마 '눈사람'의 마지막 촬영분을 찍기 위해서였다. 종영 하루 전까지 촬영을 해야 하는 강행군. '유쾌.상쾌.통쾌', 이른바 3쾌(快)의 대명사였던 그녀도 많이 지쳐 있었다.

억척스런 버스 안내원 연실이(SBS '화려한 시절'), 목청 크고 싸움 잘하는 여학교 '짱' 나영(영화 '품행제로')은 잠시 '부재중'이다.

"어휴, 정말 힘드네요. 쫑파티까지 뒤로 미뤄야 할 정도로요. 이번 작품에 진짜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변신이란 고통스러운 거잖아요. 게다가 멜로의 대가로 통하는 감독님(이창순 PD) 눈이 좀 높으셔야죠."

그래도 특유의 호기심만은 여전하다. 쉴새 없이 질문이 쏟아진다. 자신의 연기에 대한 것들이다. 분명 주객이 전도됐다.

"제 멜로 연기가 어땠나요? 표정.목소리…등등, 무엇보다 눈물연기는요? 멜로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20%가 넘던 시청률이 나중에 조금씩 떨어졌는데, 혹시 저 때문은 아니죠? 제가 너무 진지한 연기를 해서가 아닐까요?"

"제가 이미지 변신엔 성공한 걸까요? 다음 작품으론 어떤 장르를 골라야 되죠?"

'눈사람'은 그녀로선 일대 모험을 감행한 작품이다. 드라마.영화에서 '발랄녀'로 확실히 자리잡은 만큼 비슷한 장르를 골라 무임승차만 하면 되는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정통 멜로 연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것도 실제 나이가 15세나 차이나는 조재현을 상대로. 사랑도 보통 사랑이 아니다. '형부와 처제'라는 금기의 사랑이다. 또래 연기자 중 일부는 그녀에게 "캐릭터 배우를 하면 편한데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충고하기도 했다.

"사실은 뭔가에 씐것 같기도 해요. 저도 제가 왜 선택됐는지 지금도 모르겠거든요.(이PD는 그녀가 거칠어 보이지만 강렬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마 제 운명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녀는 해냈다. 방영 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네티즌들은 "공효진의 캐스팅이 가장 잘 됐다"고 평가했다.

"드라마 첫 부분은 평소 이미지대로 연기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예를 들면 화장실에서 나오는 형부에게 '똥 쌌어요? 고체예요, 액체예요?'라는 황당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죠. 하지만 우울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표현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특히 가슴 떨리는 미묘한 사랑의 감정은요."

그녀는 현실에서 필승(조재현)과 연욱(공효진)처럼 사랑을 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사랑해야 언니의 남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 그래서 머리.가슴 속으로 수천번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런 식으로 감정의 불씨를 되살렸다.

"큰 산을 하나 넘은 느낌이에요. 이제 푹 쉴 생각이에요. 당분간 절 보시기 힘들 거예요. 굿바이!"

논쟁 치열한 '눈사람'결말=제작진이 필승과 연욱이 함께 사는 것으로 극을 마무리짓자, 인터넷 홈페이지가 달아오르고 있다. "패륜이다""아름다운 결말이다"란 상반된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형부와 처제의 사랑, 그만큼 미묘한 사랑이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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