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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경영합리화와 효율화|「등록금자율화」는 인상 구실 될 수 없다|김영식<서울대 교육대학원 부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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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 학기부터 정부는 대학생의 등록금에 대한 규제를 풀어 이를 대학의 자율적 책정에 맡기기로 했다. 지금까지 정부에 의한 등록금의 일률적 통제는 교육의 질이 낮은 부실대학에는 보호의 온상이 되어 왔고 건실한 사학에는 대학발전을 저해하는 장벽이 되어왔다. 이는 또한 대학의 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거의 같은 등록금을 받게 하여 교육내용의 혁신이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대학들에는 오히려 그 의욕을 둔화시켜왔다.
그런데 이번의 정부조치는 고식적 학생 정원령, 학생 상호유통의 사실상 금지 등으로 폐쇄적이던 대학정책을 야생적 자유경쟁의 정책으로 전환하는 계기로 볼 수 있다. 이미 몇몇 명문사학에서는 새 학기 등록금을17%정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앞으로 각 사립대학은 등록금액수를 발표하겠지만 여기서 미리 전제해야 할 것은 대학의 등록금책정에 비교육적 요인이 작용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다. 얼마만한 교육적 반대급부가 학생에게 돌아가느냐에 따라 한 대학의 등록금은 결정되는 것이지 학기마다 인상만 하는 것이 결코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번 조치를 계기로 대학은 지금까지 받아온 등록금이 정말 교육적으로 쓰여왔고 그만한 돈을 학생들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공공기관으로서의 대학의 명예에 부끄럽지 않았나를 재검토해야할 것이다.
무릇 생산업체의 경우에도 생산품의 품질관리나 원가절감 없이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 가 없는 것이 상식으로 되어 있는데 유독 대학에서는 생산품인 학생의 질에 대한 우수성의 보장이나 관리 없이도 생존해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신기롭다. 이러한 기현상은 일반의 그릇된 교육열에도 있었지만 대학의 능력을 제대로 개별 파악하지 못한 채 폐쇄적 정원정책이나 등록금정책을 써온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되어왔다.
대학등록금의 자율화조치는 대학끼리 상호경쟁과 비교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 셈이다. 반면에 이는 또한 대학에 대해 책임 있는 양식을 더욱 더 요구하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대학등록금은 학교 차에 관계없이 받을 수 있는 한 최고액수를 받아왔다. 보다 우수한 교수진이나 시설을 갖추고 철저한 교육을 확보하는 학교나 그렇지 못한 학교가 모두 비슷한 등록금을 내고있다는 것은 재고해야할 일이다. 취득학점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22학점을 신청한 학생이나 5학점을 신청한 학생이 같은 액수의 등록금을 내고있다는 것 또한 상식에 벗어난 모순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기들이 내는 등록금이 어떻게 쓰이는 것인지 자기가 받는 교육이 얼마짜리나 되는 것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고 등록금의 의의조차납득하지 못하고있는 형편이다.
학점단가가 명시되어있는 외국대학의 경우 학생들은 한눈에 학점단가를 통해 학교의 등록금산출근거와 대학의 위치를 알 수가 있다. 한국의 대학들에서는 지금까지 등록금책정의 기준이나 근거 액수에 대한 타당성이 한번도 제시된 예가 없었다. 그저, 물가가 올랐으니까 등록금도 그만큼 올려 받아야한다는 논리뿐이다. 언제나 물가상승에서 고등교육비인상의 명분을 찾았던 것이다. 어떤 내용의 교육을 얼마만큼 시키기 위해 얼마의 돈이 든다는 등록금책정의 근거 제시가 아쉽다.
대학교육에 있어서의 만성적 병폐는 무엇을 얼마만큼 하겠다는 목표제시가 없이 그저 재정적 투입만을 강요하고 강조하는 일이다. 재정만 많이 투입하면 교육은 저절로 잘 된다는 생각은 받아들일 수 가없다. 이러한 경우일수록 도처에 낭비와 부실이 깃들이게 되는 것이다. 무엇을 얼마만큼 주고 무엇을 얼마만큼 받는다는 것이 상호간에 분명할 수록상호 간에 기대와 오해의 폭이 줄어들게 된다. 너무 비싸다, 너무 싸다는 생각은 상대적이고 극히 비과학적이다. 목표와 직결된 투자만이 그나마 제한된 교육비의 유용을 막는 구실도 하게 될 것이다.
등록금의 자율적 책정이 등록금인상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조치는 대학의 경영합리화와 효율화를 먼저 가져와야 한다. 현재의 제한된 교육자원인 인력·시설·재경의 합리적 활용은 기존하는 교육의 질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등록금을 내리게 할 수도 있으며, 현행등록금으로 현재보다 훨씬 우수한 교육의 질을 보장 할 수도 있다. 각 대학은 운영전반에 걸쳐 낭비의 소지를 제거하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대학재정의 대부분이 학부모들에게서 나오고있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미국「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의 등록금은 전체대학재정의 3분의1에 불과하며 나머지를 재단에서 부담한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대학들에서는 어떤 교육을 시키기 위해 드는 돈의 몇「퍼센트」가 학생의 등록금에 의존한다는 것을 밝혀 대학의 공신력을 높이고 있다. 건물의 증축이나 시설투자에 드는 돈은 등록금이 아니라 재단의 부담으로 하게되어 있는 것이 상례이다.
이러한 선진국의 대학운영실태는 이번의 등록금책정 자율화조치와 함께 한국의 대학들이 크게 참고해야할 것이다.
장학금제도의 강화는 적절한 대응책이라고 볼 수 있으나 등록금의 고시는 적어도 한 학기 전에 장학금의 혜택과 함께 이루어져 사회에 공개되어야한다.
이번의 조치가 대학 재정의 교육적 운영과 등록금책정의 산출근거를 사회에 공개하는 계기가 되도록 문교부와 대학은 공동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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