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자에 묻다 … 절망 속 사랑은 구원일까, 파멸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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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자인 김혜진씨는 “원래 말을 잘 못 하는 편”이라며 “대구에 계신 엄마가 ‘인터뷰 할 땐 제발 말 좀 조리 있게 하라’고 했는데 걱정스럽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올해는 정공법이 통했다. 5회째를 맞은 중앙장편문학상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진중한 이야기를 부려낸 김혜진(30)씨의『중앙역』에 돌아갔다. 지난 몇 년 늘어난 여러 장편문학상이 소재적 기발함이나 독특한 문체를 앞세웠다면 이번엔 달랐다. 별다른 기교 없이 묵직한 문장으로 밀고 나간 작가의 뚝심에 손을 들어줬다.

처음 쓴 장편소설 … 상금 1억원

 이 작품을 아주 단순한 문장으로 줄이면 거리 부랑자들의 사랑 이야기다. 언뜻 프랑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1992)이 떠오른다. 심사를 맡은 소설가 김별아씨는 “영화 ‘설국열차’에서 꼬리 칸에도 타지 못한 이들이 역에 남는다면 이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라고 했다.

 소설은 거리에 사는 한 젊은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남자가 온 종일 하는 일이라곤 도통 흐르지 않는 시간과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에게 젊음은 소진해야 할 무엇이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여자가 다가 온다. 거리의 사랑이란 건 이렇게 남루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어마어마한 소음 속에 몸을 숨기고 서로의 몸을 만진다. 그러나 예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사람들 탓에 눈치를 보며 머뭇거릴 때가 많아진다. (…)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 어디에도 서로에게 몰입할 수 있는 장소 같은 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사랑이 해피 엔딩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럼에도 책장을 넘기게 되는 건 이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이 절박하게 다가와서다.

 또 이런 문장 때문에 오랫동안 마음이 쓰인다. ‘아직도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나는 백 년이나 이백 년 동안 계속 살아 있었던 것 같다.’

 김혜진씨는 지난해 등단한 신예 작가다. 『중앙역』이 첫 장편이다. 수상 통보 직후 만난 김씨는 “이런 소설로 이렇게 큰 상금(1억원)을 받아도 될지 모르겠다”며 겸연쩍어했다.

 - 어떻게 노숙인 이야기를 쓰게 됐나

 “나는 ‘노숙인’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이미 그 단어에 편견이 섞여 있다. 그들도 그렇게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광장에도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 사회적 약자를 도와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진 않았다. 그 공간 속 개인의 이야기, 연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취재를 많이 했을 것 같다.

 “여름에 두 달 동안 서울역에서 봉사를 했다. 밤 9시부터 11시까지 역 주변을 돌며 응급 상황은 없는지, 잘 계신지 얘기도 하고 기록도 했다. 그게 계기가 됐다. 멀리서 볼 때는 노숙으로 통칭되지만 개개인들은 그렇지 않더라. 알코옥 중독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분도 많았다. 마냥 절망의 공간이 아니라 어떤 활기가 있었다.”

서울역서 두 달 봉사하며 취재

 - 소설 속 여자의 대사를 빌려보자. ‘정말 이런 곳에서 연애 같은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보통 두 사람이 만나면 미래를 그리게 된다. 그게 없는 관계가 가능할까 궁금했다. 앞이 안 보이니까 더 많이 좋아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만 만나야겠다는 양가적인 감정이 충돌할 거다. 사랑이란 게 어떤 사람을 발전시킬 수도 있지만 파괴할 수도 있다. 나는 파괴하는 쪽의 사랑이 더 강렬하고 진짜 같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 봤다. 소설 속 남자와 여자는 사랑 때문에 나락으로 떨어질게 분명하지만, 그 사랑만이 그들에겐 유일한 거다.”

 - 작가 본인의 연애는 어떤가

 “(웃음) 나는 연애를 하면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된다. 생활이나 인간관계, 감정 모든 게 그렇다. 다 내놓고 사랑하는 편이다. 글도 쓰고 돈도 벌고 계획도 세워야 하는데 다 안되고 망치게 되는 거다.”

 - 이른바 ‘88만원 세대’에겐 사랑도 기회비용이다, 소설 속 거리의 사랑과 비슷한 것 같다.

 “그렇다. 만약 직업도 있고 수입도 있고 나이도 있으면 연애가 더 쉬울 것 같기도 하다. 연애를 하면 열 중 한 가지가 좋고 나머지 아홉은 안 좋다. 연애가 끝나면 이것을 복구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 ‘아 이제는 안 해야겠다’ 생각하지만 또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고.”

 - 계급의 문제도 녹아 있다.

 “서울역을 가보면 역을 둘러싸고 쪽방촌이 동심원처럼 있다. 거리의 생활을 청산하려면 그 겹겹의 동심원을 건너서 나가야 한다. 소설 속 남자와 여자도 그렇게 하고 싶다. 하지만 도시는 쪽방을 철거하려 한다. 벗어날 수 없는 거다.”

 -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계급이란 게 완전히 상층에 있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언제든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 서울역엔 과거에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사람도 많다. 그들을 보면 나도 자유롭지 않구나 생각한다. 특히 또래를 보면 더 마음이 가더라. 나도 힘들 땐 폐지를 주워야 하나 싶어서 값을 알아본 적이 있었다.”

 - 작가 자신은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없었나.

 “소설을 쓰고 싶어서 대학을 두 번 갔다. 서울예대 졸업 후 2008년쯤 대구에 계신 엄마가 갑자기 용돈을 끊었다. 글 쓴답시고 아무것도 안 하니까 언제까지 생활비를 줄 수도 없고, 엄마에겐 최선이었다. 그 때 이후 지금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하루 4시간씩 자고 일했는데 돈이 안 벌리더라. 나는 왜 이렇게 단가가 싼가 좌절하기도 했다. 한 번은 돈이 너무 없어서 친구한테 100만원을 빌려 열 달 동안 10만원씩 갚았다. 고양이를 키웠는데 제일 싼 사료를 사다 주면서 많이 먹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안 해본 알바 없어 … 계속 쓰고 싶다

 김씨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등단작 ‘치킨 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자 배달부가 한 남자의 자살을 도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용기 있는 신예에게 거창한 포부는 없다고 했다. 그저 이 세계의 변두리에서 계속 글을 쓰고 싶을 뿐이다.

 “글 쓰는 게 항상 즐겁진 않은데 싫진 않다. 혼자 하는 일이라서다. 그게 마음에 들고 독자를 상상하는 것도 즐겁다. 그만큼 괴롭고 외롭고 고독할 거지만.”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혜진=1983년 대구광역시 출생. 영남대 국문과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고려대 문예창작과 대학원 재학 중.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치킨 런’ 당선.

중앙장편문학상=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작품을 발굴하기 위해 2009년 제정됐다. 중앙일보와 웅진씽크빅이 주최한다. 상금은 1억원이다. 올해 수상작 『중앙역』은 내년 초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시상식은 21일 오후 6시 서울 서소문 오펠리스 라비제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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