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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기업 환경, 국경도 비밀도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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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 올해 초 한국과 대만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중국에 한 방 먹었다. 타격을 준 건 중국 기업이 아니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RDC)였다. NRDC는 삼성·LG디스플레이와 대만 치메이 등 6개 업체가 담합했다고 판정했다. 과징금 총 규모는 600억원에 달했다. 이 중 절반 이상이 한국 업체(삼성 172억원, LG 201억원)에 부과됐다. NRDC가 담합으로 해외 업체를 제재한 것은 이번이 첫 사례다. 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미국·유럽에 이어 중국이 가세하면서 담합 처벌도 이제 완전히 국제화됐다”고 진단했다.

 #2. 현대자동차는 이달 출시할 신형 제네시스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은 제네시스를 “현대차의 모든 기술이 집약된 차”라고 규정했다. 일부 공개된 기능·디자인에 대한 호평과 함께 해외 경쟁업체도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네시스 마케팅은 엉뚱한 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문제가 생긴 곳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제네시스 4행시 짓기 이벤트다. 네티즌들은 최근 누수 결함이 생긴 싼타페에 빗댄 조롱성 글을 올렸고, 인터넷 퍼나르기가 이어지면서 당선작보다 더 큰 관심을 받았다.

“한국 CEO, 외부변화에 대응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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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들이 새로운 위험 앞에 서 있다. 국내에서만 안 걸리면 그만이던 담합 제재에 국경이 사라졌다. SNS는 기업의 위기 대응력을 평가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복지 지출의 증가로 기업이 져야 할 세금 부담은 점점 커지고 있다. 엄격해진 기업 관련 판결은 오너 리스크를 높였다. 생산성 제고는 한국 기업이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다.

기업 관련 소송·자문을 하는 법무법인 바른은 이 같은 위험을 기업이 마주한 5대 위험이라고 규정했다. 김재호 대표변호사는 “5대 위험에 사후 약방문식으로 대처하다간 기업이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과거에는 기업 외부 여건의 변화가 지금처럼 빠르지도, 변동성이 크지도 않았기 때문에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는 내부 관리에 비해 외부 변화에 대한 대응과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오너 리스크는 이미 여러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기업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은 일회성을 넘어 평균 10.7년 지속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오너가 재판을 받으면 이런 활동이 한꺼번에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정한중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 성장의 과실이 서민에게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기업인의 선처 호소가 먹히지 않고 있다”며 “법원도 국민의 법 감정을 무시하기가 어렵게 됐다”고 진단했다.

“사후 약방문식 대처 땐 치명타”

이런 와중에 세금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가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0일 보건·복지·고용 관련 재정지출이 2017년 127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 돈이 나올 곳은 결국 기업뿐이다. 새로 생긴 세금도 대부분 기업이 대상이다. 올해 첫 신고를 받은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는 1859억원에 이른다. 삼성이 에버랜드에서 외식 사업 등을 떼내고 패션 부문을 넣은 것도 후계 구도와 함께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해외에서도 유럽 재정위기 이후 각국 재정이 빠듯해지면서 해외 탈루를 잡기 위한 국가 간 협력이 강화됐다. 비밀의 상징이었던 스위스 금고에 대한 정보 제공도 늘어나는 추세다.

 생산성 제고는 오랜 숙제지만 절박함은 더 커졌다. 정년 연장, 근로시간 단축은 이미 입법화되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 부활 정책, 일본의 엔저 정책, 중국의 추격 등은 한국의 입지를 좁혔다. 노사문제는 여전히 쉽지 않다. 현대차에선 2년 만에 실리파 노조위원장이 나왔지만, 현대중공업은 12년 만에 강성 노조가 재등장했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순히 제조업 생산성 제고를 넘어서는 아이디어 집약적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비리 감시 채널 더 많아져

 SNS는 과거에 없던 새로운 위험이다. 김재호 바른 대표변호사는 “IT 발달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줄면서 시민권력의 시대가 됐다”며 “기업 비리를 감시할 수 있는 채널이 넓어지고 촘촘해져 더 이상 ‘우리만 아는 비밀’은 없다”고 강조했다.

김영훈·채윤경 기자
중앙일보·법무법인 바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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