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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령화 대책에 북한이 ‘와일드 카드’ 될 수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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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호 10면

조용철 기자

-고령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고령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도 대표적인 고령화 국가다. 한 나라가 계속 발전하려면 잠재 성장률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인구가 꾸준히 늘어나 사회가 활력을 유지해야 한다. 아시아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돼 조만간 심각한 문제가 되겠다 싶었다.”

한국 경제·고령화 전문가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한국에서도 고령화 현상이 간단찮은데.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프랑스가 100년 넘게 걸린 데 비해 일본은 24년밖에 안 걸렸다. 한국은 더 짧아서 18년 걸린다고 하는데 최근 추세로 보면 더욱 단축될 것 같다. 그만큼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이 고령화의 고비를 제대로 넘지 못하면 중국과의 경쟁에서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한국이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는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왼쪽부터) 조윤제 교수와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조용철 기자

 -일본은 고령화에 어떻게 대처했나.
 “1960년대부터 시행돼온 복지 6법이란 기본법에 더해 90년대엔 고령화에 대비한 재원 마련을 위해 개호(介護)보험 제도를 만들어 40세가 넘으면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자민당 내에는 복지족·교육족·안보족 등 유난히 족(族)이 많은데, 이들이 관료들과 결탁해 고령자 복지를 적극 내세웠다. 간단한 셈법 아닌가. 젊은 사람은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인구 구조는 역삼각형으로 돼 가니 선거 때만 되면 표를 위해 고령화 대책을 앞세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선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종이에 한자를 적으면서) 대책은 자조(自助), 공조(公助), 관조(官助) 등 크게 세 가지가 가능하다. 한국은 현재 자조와 관조 개념밖에 없는데 앞으로는 공조가 가장 도움이 될 거다. 본인이 건강과 일자리를 미리 챙기는 자조나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인적·재정적 지원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개인도, 정부도 아닌 중간자적인 제3자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어떤 공조가 가능한가.
 “무엇보다 커뮤니티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특히 농촌지역의 노령화가 심각한데, 마을 주민들은 이웃의 가정사까지 다 알고 지내지 않는가. 그런 만큼 자체적인 공동체 모임을 통해 노인을 맞춤형으로 돌보게 하고 정부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가 훨씬 효율적이다. 지역 NGO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는 그러면서 “조그만 일상적 해법부터 찾아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주 간단히 쓸 수 있는 휴대전화를 노인들에게 지급해 버튼만 누르면 하루 세 번 오는 버스가 언제 오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면 엄청난 예산을 들인 그 어느 정책보다 만족도가 높을 거다. 노인들의 말벗이 돼 주는 서비스도 중요하다. 이는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고 국가적으로도 보험료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남북한 FTA 땐 모든 고민 해소 가능
-한국도 60세 정년 연장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회적 의미와 파장이 작지 않을 듯한데.
 “정년 연장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합리적 고용 안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생각해 보라. 대부분 50세가 넘으면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지 않나. 55~65세에도 현재 직장에 있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나. 이처럼 정년이란 개념이 의미를 상실한 상태에서 명목적으로 연장만 하는 건 실효성이 크지 않다.”

 -어떤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고 보나.
 “정년 연장은 연금제도와 직결돼 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과 일본 정부가 정년 연장에 적극적인 이유 중 하나는 연금 지급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기업·국민이 모두 협력해야 한다. 도요타처럼 65세 정년제를 유지하는 기업에는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적극 지원하되 기업들도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등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노력해야 한다. 국민도 임금피크제 등을 수용해야 한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도 고령자 고용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게 은퇴자에게 그냥 연금을 주는 것보다 훨씬 돈이 덜 든다.”

 -결국엔 고령자들의 건강이 사회적으로나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해질 것 같다.
 “건강이야말로 복지비용을 줄이고 국가 재정도 튼튼히 하는 열쇠다. 특히 한국은 고령자의 몸 건강뿐 아니라 마음 건강에도 신경 써야 할 거다. 한국의 노인 자살률은 압도적으로 세계 1위다. 일본보다 6배나 높다. 노인 우울증 환자도 얼마나 많은가. 자녀가 돌봐 주는 시대는 이미 끝났지만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공조가 중요하다. 산업적으로도 한국의 앞선 정보기술(IT)에 메디케어산업을 연계시키면 경쟁력 있는 한국형 벤처기업이 나올 수 있다.”

 -한국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북한이 긍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나.
 “물론이다. 북한이 상식적인 나라만 된다면 일본엔 없고 한국에만 있는 유일한 와일드 카드가 될 수 있을 거다. 북한 문제가 간단하진 않지만 경제적으로만 볼 경우 북한이 국제사회에 복귀하면 한국의 거의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소될 수 있다. 남북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게 되면 같은 말을 쓰는 저임금의 풍부한 노동력이 확보되고, 대규모 토목공사 특수(特需)가 수반되며, 부동산 값도 안 떨어지고, 해외 기업들의 한국행도 잇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민자 수용정책을 펼쳤다가 적잖은 사회적 갈등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걸 감안하면 엄청난 호재다.”

창조경제 핵심은 ‘넘버 원’ 아닌 ‘온리 원’
-아베노믹스가 화제다.
 “불황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서 일본인들은 성장이란 걸 잊어버렸다. 지금 대학생들도 성장이란 걸 모르고 자란 세대다. 그렇다 보니 도전하기보다 늘 안전하게 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도전이 없으니 혁신도 없다. 또 소득이 늘지 않으니 소비를 하지 않아 공급 과잉을 초래했고 이런 구조적인 악순환이 계속됐다. 여기에 민주당이 너무 분배 중심으로만 가니까 아베 신조 총리가 ‘성장 없인 복지 없다. 경제가 최우선이다’며 정책 전환에 나선 거다.”

 -한국 경제는 어떻게 보나.
 “대기업과 제조업은 괜찮은데 치열한 국제 경쟁과 중국의 추격을 감안할 때 미래 성장을 담보하기엔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고용이 뒤따르지 않다 보니 서민들 입장에서는 ‘수출이 늘면 뭐 하냐. 나와 무슨 상관이냐. 생활은 갈수록 힘들어지지 않나. 자식 취업부터 시켜 달라’는 생각을 갖기 마련이다. 박근혜정부도 대기업 위주 정책만으로는 힘들다는 걸 아는 듯한데, 문제는 창조경제의 구체적 내용이 뭔지 확실히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후카가와 교수는 “지금껏 대기업 위주로 해 오다가 하루아침에 캘리포니아처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소·벤처기업들의 활발한 도전을 어떻게 이끌어 낼 수 있느냐가 과도기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본의 기업 정책은 어땠나.
 “일본은 한국만큼 몇몇 대기업에 모든 자원이 집중돼 있지 않았다. 대신 중소기업의 기반이 컸다. 일본 중견기업 중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는 기업이 적잖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그동안 ‘넘버 원’을 추구해 온 반면 일본의 중소기업들은 ‘온리 원’에 집중해 왔다. 온리 원이 되면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따라서 환율 등에도 영향받지 않게 된다. 창조경제도 넘버 원보다는 온리 원을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느냐가 핵심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부동산 문제를 언급했다.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 기업이 너무 급격히 구조조정되다 보니 은행이 대거 소비금융 쪽으로 눈을 돌렸고 그러면서 주택대출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은행도 더 이상 위험 부담을 떠안기 힘든 상황이다. 앞으로 부동산 경기가 어떻게 될지는 한국 경제에서 외환위기 못지않게 커다란 변수가 될 것이다. 이는 한국의 고령자 문제와도 직결된다. 연금제도가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 집 한 채에 의존하고 있는 고령자가 상당히 많지 않은가.”

 -한국 경제는 어디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까.
 “한국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적자원이 최대 무기다. 하지만 낭비적 요소가 심하다. 스펙은 다들 엄청난데 너무 획일화돼 있고 너도나도 몇몇 대기업에만 가려고 혈안이다. 대기업 간부들을 만나 봐도 다양한 인재를 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상당하더라.”

 -결국 내수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다.
 “맞다. 내수가 고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혁신 역시 수출보다는 내수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아마존이나 아이폰도 미국이란 큰 내수시장에서 먼저 적응기간을 거친 뒤 세계로 나간 것 아닌가. 그 과정에서 실패도 많이 하지만 성공사례가 끊임없이 나오니까 계속 도전하는 거다. 결국 내수가 뒷받침돼야 창조경제도 가능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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