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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뿌연 하늘에 나타난 경유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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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규연
논설위원

환경 가문(家門)에는 길들여야 할 왈패 셋이 있다. 쓰레기·수질·대기오염이 그것이다. 지난 수십 년 새 쓰레기 왈패는 어디에 선보여도 빠지지 않을 만큼 얌전해졌다. 수질오염 중 적어도 식수 문제는 고삐가 잡혔다. 하지만 대기 왈패는 여전히 거칠다. 서울에 떠다니는 미세먼지의 수준은 미국·유럽 도시의 두 배다.

 세상에는 작을수록 무서운 게 있다. 먼지가 그렇다. 환경 족보에는 먼지도 모자라 미세먼지, 초(超)미세먼지라는 이름이 올라 있다. 머리카락 직경의 100분의 1 안팎의 작은 알갱이는 일반먼지·황사와 달리 숨쉴 때 걸러지지 않는다. 마스크를 해도 무사 통과해 허파의 말단세포에 척 달라붙는다. 이 먼지에는 온갖 중금속이 묻어 있다. 바로 심한 호흡기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 오랫동안 몸에 쌓이면 암을 부를 수도 있다. 그 유해성은 담배 연기와 비슷하다.

 무서운 놈을 끊임없이 배출하는 못된 가문은 어디일까. 오랫동안 경유차 매연이 지목받았다. 그런데 2006년 논란이 벌어진다. 한 대학 연구팀이 수도권 상공의 미세먼지 발생에 미치는 경유차 비중이 미미하다는 결과를 내놓는다. 그보다는 중국에서 날아오는 놈이 훨씬 많다고 추정했다. 경유·디젤엔진의 품질이 확 개선돼 휘발유·가솔린엔진과 견주어도 조신한 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환경부와 지방정부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패륜 가문을 경유차로 보고 엄청난 돈을 들여 노후 경유차를 없애는가 하면,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논쟁은 격렬했지만 결론은 두루뭉술했다. ‘중국 먼지와 국내 오염물질이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새 차는 몰라도 노후 경유차가 미세먼지의 주 배출원 중 한 곳이라는 데는 의견을 같이한다. 올해에도 정부는 경유차 매연을 줄이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배정했다. 서울시는 7년 이상 노후 경유차를 폐차하면 150만~700만원의 보조금을 주는 시책까지 내놓았다.

 요즘 중국 북동부의 하늘은 잿빛이다. 베이징의 미세먼지는 세계보건기구 기준의 40배까지 치솟았다. 놈들에게 국경은 없다. 북서풍을 타고 자주 한반도로 넘어와 말썽을 부린다. 게릴라 공습에 두려움이 커지는 판에 난데없이 경유택시 도입 문제가 튀어나왔다. 유가보조금을 주자는 안이다. 지금은 LPG택시가 주종이다. 주창자는 국토교통부·정유업계다. 연료 다변화를 통해 택시산업의 경영난을 풀어주려는 취지다.

 경유택시는 지난해 택시법 파동의 후예(後裔)다. 선거를 앞둔 여야는 택시를 대중교통의 우산에 집어넣는 법을 통과시킨다. 적지 않는 재정 투입이 뒤따르는 조치였다. 택시업계의 여론 영향력을 의식한 행태였다. 업계 경영난을 대중교통 편입이라는 꼼수로 풀려 한다는 비난이 빗발친다.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 법안을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국토부 입장에서는 택시업계의 불만을 잠재울 다른 대책이 필요했을 것이다.

 택시의 일생은 험하다. 수십 만㎞를 뛰어야 수명을 다한다. 거친 운전에 금방 낡는다. 노후 경유택시가 내뿜는 초미세먼지는 시민의 폐포에 스며들 것이다. 한번 늘어나면 단속도 어렵다. 택시업계의 어려움을 알지만 보편적인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방식으로 푸는 것은 맞지 않다. 가뜩이나 택시요금은 올랐는데 서비스는 나아지지 않았다는 불만이 터져나오는 상황 아닌가.

 기술 발전으로 경유·경유차가 깨끗해졌다는 주장은 진지하게 검증해 볼 문제다. 그것이 맞다면 택시만이 아니라 에너지 정책 전반을 손질해야 한다. 이 문제를 현재 논의 중인 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포함시키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당장은 공공영역에서 손발은 맞아야 한다. 한쪽에서는 노후 경유차 폐차에 엄청난 돈을 쓰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늘리는 데 세금을 투입하겠다는 꼴이다. 뿌연 중국 먼지 속에 갑자기 나타난 경유택시 의제(議題)는 아무래도 생뚱맞다. 지금은 대기오염이라는 왈패를 길들이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오늘의 컴컴한 하늘을 내일에 물려줘서야 되겠나.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