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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베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얘들아, 너희들 옷 갈아입고 모두들 벼 베러 가자』하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자 우리는 모두 『예』하면서 낫자루를 들고나선다.
우리 집 논농사는 올해가 처음이다.
공무원인 아버지의 적은 월급으로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지만, 어머니가 부업으로 돼지를 기르고 겨울에는 길쌈도 하신 덕택에 알뜰히 저축을 해서 작년에 논10마지기를 샀던 것이다.
첫 논농사에 모두들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 온 덕분에 여름 내내 일꾼 하나도 얻지 않고 뙤약볕 아래서 김을 매고 가꾼 보람의 열매를 오늘 우리의 힘으로 거두어들일 작정이다.
맑게 갠 가을날, 마냥 드높은 파란 하늘에는 어디서 생겼는지 하얀 물거품과 같은 구름이 둥실둥실 떠있고 들판의 황금물결 속에 알알이 결실을 해 고개 숙인 벼이삭은 탐스럽기만 하다.
자연의 신선함, 감미로운 공기를 마시면서 우리는 잽싸게 손을 놀리고 쓰싹 쓰싹 소리와 함께 볏단이 한단 두단씩 쌓여간다. 우리의 얼굴에는 비오듯 땀방울이 방울방울 흐른다.
낮12시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데 누군가 『저기엄마가 점심 가지고 온다.』 소리치자 모두들 좋아서 소리치며 야단들이다. 야외의 들놀이 가서 먹는 밥보다 온 식구가 일하다가 논둑에 둘러앉아 베어 놓은 볏단을 바라보면서 먹는 밥맛이 더 맛있었다.
오후에는 고단해서 허리를 펴다 앉아있다 하니까 아버지가 한 사람 한 사람 앞에 몫을 지워주고 먼저 베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하자 우리 집 막내 7살 짜리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제일먼저 베고 논둑에 앉아서 땀을 닦으면서 『큰누나 것 거들어 줘야지』하면서 내게로 와서 베기 시작했다.
저녁때 모두들 얼굴을 쳐다보니까 검붉게 타있고 손에는 처음 낫을 잡아서 그런지 물집이 생겨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쌀을 안 사먹어도 되고 그렇게되면 저축도 늘어감에 따라 우리의 생활도 여유가 있어질 것이다. 생각하니 오늘의 피로는 기쁨으로 풀 수가 있다. 【최순희<강원도 삼척군 북평읍 효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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