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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를 한국에서 잠들게 해 달라.』 해방 전 강원도 무의면에서 인술을 펴다가 종전 후 일본으로 돌아가 3년 전에 사망하면서 한국에 묻히기를 원했던 한 일본인 의사의 유골이 26년만에 현해탄을 건너와 옛날 돌봐줬던 환자자손들의 마중 속에 한국 땅에 묻힌다.
15일 상오 「가사오까」씨(입강휘소·38·동경도중야구)는 고인이 된 아버지의 영정을 안고 입국, 아버지가 기리던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자은리로 향했다.
「가사오까」씨의 유골이 이 땅에 묻히기까지는 현지주민들의 「가사오까」씨에 대한 따뜻한 추모의 정이 흘러 두촌면장의 이름으로 초청된 사연이 있었다.
「가사오까」의사가 한국에 온 것은 1930년이었다. 29세의 「가사오까」씨는 처음 서울에서 약2년 동안 병원에 있다가 곧 무의면인 두촌면으로 가서 병원을 냈다는 것. 영정을 안고 온 아들 「가사오까」씨는 이때 4살이었다. 「가사오까」의사는 평생 처음으로 의사를 본다는 시골사람들에게 거의 무료봉사, 인술을 폈고 4년 후 이곳에 한의한사람이 생기는 것을 보고 다시 더 깊은 산골로 들어갔다.
인술의 불을 밝히면서 벽지로 벽지로 옮겨 결국 금강산기슭인 온정리에서 해방을 맞은 것.
이때 「가사오까」의사의 어머니가 사망, 이 온정리 뒷산에 묻었다.
온정리는 38선 북쪽에 들었는데 친절한 마을사람들이 『도망가라』고 하여 12월께 밀선을 타고 탈출, 귀국했었다.
「가사오까」씨는 늘 어머니가 묻힌 땅에 묻히고 싶다고 얘기했으나 한번도 와보지 못하고 68년에 사망했다.
그동안 편지로 「가사오까」씨의 소식을 알던 두촌면장 이호영씨가 작년에 아들 「가사오까」씨를 초청해 그때 유골을 갖고 와 호국사에 안치했던 것인데 이번에 자은리 뒷산에 묘지를 정했다는 것.
「가사오까」씨가 이 마을에서 의사로 있을 때 돌본 어른들은 모두 사망하고 이제는 그때의 어린이들이 성장했는데 어렸을 적 기억으로 무척 인자한 의사였다는 소문이다. 「가사오까」씨의 유골은 18일 낮 매장된다.
15일 서울에와 KAL「호텔」에든 아들 「가사오까」씨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 소주·사과·군밤을 받쳐 놓고 『옛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것 많이 드세요』하고 공양했다.
「가사오까」씨는 무명일 일본인의 위령탑이 문제를 일으키는 등 사정아래서 두촌면민들과의 정이 한일친선에 이바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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