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감축 거부설의 주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국방성 당국이 현재의 해외 주둔 미군 병력 13개 사단을 11개 사단으로 감축,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1개 사단도 철수시키자고 건의한데 대해 「닉슨」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고 「뉴요크·타임스」지가 9일 보도했다.
보도의 골자는 미 국방성의 한 관리가 이 계획을 성안했으나, 지난 8월5일의 미 국방 계획 심의 위원회와 8월15일의 국가 안보 회의에서 「로저즈」 국무장관·「존슨」 국무 차관 및 「키신저」 특별 보좌관 등이 이를 반대했으며, 이 논쟁 경위를 청취한 「닉슨」 미국대통령은 73년 여름까지 13개 사단 병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주한미 제2보병 사단도 계속 현 주둔지에 머물러있도록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에 접하여 우리가 우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미 국방성은 지난 6월30일에 있었던 주한미 제7보병 사단을 포함한 2만명의 감축에 뒤이어, 바로 그 제2단계 조치로 나머지 주한미 제2사단 병력의 철수마저 서두르려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들이 한국으로부터 철수한다 하더라도 그 실시에는 상당한 시일의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보았으나, 이번 보도를 보면 미 국방성은 예상외로 빨리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서두르고 있음을 역연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보도를 통해 분명해진 것은 비록 「닉슨」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현 병력 수준을 73년까지는 유지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이는 곧 바꿔 말하면 73년까지는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가 있게 되리라는 사실을 뒤집어서 증언한 셈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것으로써 분명해진 것은 이 철수문제를 가지고 미국의 같은 행정부 안에서조차 국방성과 국무성 사이에 이견이 노정 되고 있으나, 다름 아닌 군사 정세 평가에 가장 정확해야 할 미 국방성 측이 도리어 주한미군 철수를 서두르고 있음을 드러냄으로써 우리의 상식을 뒤엎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국제 정세 전반의 해빙과 또 그 중에도 특히 「닉슨」의 중공 방문으로 상징되는 미·중공간의 급속한 화해·접근 「무드」를 계기로 미국이 「아시아」 전역으로부터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그 세력을 감축시키려 한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한반도의 현 정세를 그대로 둔 채 미국이 한국민에게 거듭 확약한 대한 방위 공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무책임한 철수를 추진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물론 우리도 언제까지고 미군이 무기한으로 이 땅에 주둔해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으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최소한 한국에서의 긴장이 명실공히 해소되고, 한국의 자위력이 충분할 때까지는 그들이 한국을 지원해야 할 의무를 가졌다는 것이다.
주한미군 2만 감축과 더불어 미국은 국군 현대화 5개년 계획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확약한바 있지만, 지난 10월29일 미 상원은 자칫하면 그것마저 불가능케 한 외원 수권법안을 송두리째 폐기하여 우리에게 큰 충격을 준바 있다. 미국의 대한 방위 협조와 지원은 문서상의 공약을 비롯해서 실제 병력 주둔·군사 원조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겠으며, 이것이 최근 전면적으로 또 이렇다할 이유 없이 급진적으로 축소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은 우리가 매우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사태인 것이다.
미국은 대한 정책에 있어서 무엇보다 한국민의 여망에 어긋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특히 한국 정세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토대로 우리가 모처럼 이룩된 방위 태세를 약화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끝으로 우리 정부로서는 미국 측의 이 같은 심상치 않은 동향에 비추어 그 내막을 정확히 알아보면서 이에 대처할 효율적인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정정=작 일본란 제1사설 4단 1행은 제2사설 2단 1행으로 갈 것이 잘못 조판되었기 바로 잡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