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왔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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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어느새 겨울이 문턱에 다가섰다. 입동도 지났다. 이제부터 밤이 길고 창 밖을 휘몰아치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는 계주에 들어섰다.
우울한 나날, 1년 중에서 가장 서글픈 계절이 왔다.
휘몰아치는 바람, 벌거숭이의 숲, 다갈색으로 메마른 목장의 나날이 이제 온 것이다.
이런 철에는 목을 매거나 물에 빠져 죽고만 싶어진다고까지 어느 영국인은 노래한 적이 있다.
확실히 영국의 11월처럼 음산한 날도 없다. 영국인들의 기질이 밝지 못하고, 드러내놓고 웃는 버릇이 없는 것도 바로 이런 계절의 탓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황량한 겨울의 문턱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참는 것은 꼭 영국 사람들만도 아닐 것이다.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 저녁놀의 아름다움도 이제는 없다. 이루어 놓은 것보다는 이루다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리고 또 너무나도 많은 깨진 것들이 한없이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꿈마저도 11월의 싸늘한 햇빛 속에서 시들어간다. 앞으로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지금까지 잃어왔던 것들에 더 회한의 눈을 돌리게 만드는, 그런 우울한 나날이 이제부터 우리들을 괴롭혀 나갈 것이다.
예 같으면 마른 풀 모아 따뜻이 불지핀 온돌방 아랫목에서 어린이들은 할아버지가 펼쳐놓는 동화의 세계 속에서 단꿈을 꿀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또 할머니는 연시를 까주고, 밤을 구워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어린이에게 들려 줄 동화가 없다.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동화를 잊어버린지 퍽 오래된다.
들려주고 싶다 하더라도 어린이들이 들으려 하지를 않는다. 연시와 군밤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도시 어른들이 들려주는 동화들이 어린이들에게는 믿어지지 않고 조금도 감미롭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평화스런 잠자리를 펼쳐주지도 못하는 것이다.
창 밖을 스치는 삭풍이 너무도 무섭기 때문에서일까. 아니면 연탄불로 데운 온돌 바닥이 두려운 때문일까.
반드시 그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그저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를 어른들 스스로가 조금도 믿고 있지 않다는데 탈이 있는 것이다.
그런 눈치를 보이면서 어른들이 들려주는 동화를 믿으라 한다면 그러는 어른들이 나쁠 뿐이다.
영국의 11월이 죽음으로 몰아넣는 계절이라 한다면 한국의 11월은 자꾸만 도피로 몰아넣는 것만 같다. 동화의 세계를 찾아서 말이다. 어디를 가나 아름다운 동화가, 또는 동화를 들을 수 있는 달콤한 보금자리가 없다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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