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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시진핑의 중국 개조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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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1년 전 시진핑(習近平)이 중국 공산당의 최고 지도자가 됐을 때 그에겐 ‘5세대 지도자’란 수식어가 따랐다.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를 잇는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시진핑 집권 1년(11월 15일)을 맞는 이제 5세대 지도자란 말은 들리지 않는다. 대신 ‘차이나 3.0 시대’의 지도자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마오가 차이나 1.0 시대의 지도자라면 덩은 2.0 시대의 지도자, 그리고 시진핑은 3.0 시대의 지도자란 이야기다.

 여기엔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덩 노선의 추종자일 뿐이란 인식이 배어 있다. 반면 시진핑은 마오나 덩과 같이 시대에 큰 획을 긋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담겨 있다. 마오쩌둥은 중국을 연 군주(開國之君)다. 마오의 차이나 1.0 시대에 중국은 정치는 레닌주의, 경제는 계획경제를 실시했다. 덩샤오핑은 중국의 개혁을 이끈 군주(改革之君)다. 덩의 차이나 2.0 시대에 정치는 안정, 경제는 시장경제 도입이란 변화를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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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의 차이나 3.0 시대는 어떤 모습인가. 마오와 덩의 유산이 모두 현시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시가 강력한 국가 건설과 개혁개방을 함께 추진해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중흥시킬 군주(中興之主)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겠다는 ‘중국꿈(中國夢)’이 그것이다. 이 같은 꿈을 좇아 시진핑은 지난 1년 동안 어떻게 달려왔는가. 요약하면 정치적으로는 한층 더 조이고 경제적으로는 더욱 대담하게 푸는 정좌경우(政左經右)의 행보였다. 시진핑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불리는 이 길을 걷고자 현재 세 가지 조합을 활용 중이다.

 첫 번째는 정치적 측면의 시진핑-류윈산(劉云山) 조합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다. 이데올로기 담당의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과 함께 공산당원은 물론 일반 라오바이싱(老百姓)의 사상부터 우선 단단히 틀어쥐겠다는 계획이다. 두 번째는 사회적으로 민심을 잡기 위한 시진핑-왕치산(王岐山) 조합이다.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인 왕치산을 반부패(反腐敗) 투쟁의 선봉에 내세워 파리든 호랑이든 다 때려잡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일궈내기 위해 총리 리커창(李克强)과 호흡을 맞춘 시진핑-리커창 조합이다. 시진핑의 차이나 3.0 시대는 바로 이 세 가지 조합의 마차가 ‘중국꿈’이라는 원대한 골인 지점을 향해 밤낮으로 달려가고 있는 모양새다.

"거울 보고 옷매무새 똑바로 하자”

 중국에 새 지도자가 들어설 때마다 서방이 갖는 기대가 있다. 다당제·선거제도 도입 등 서구식 정치개혁에 대한 희망이다. 수줍고 온화한 이미지의 후진타오가 집권했을 때 특히 기대가 컸다. 그러나 결과는 역시 실망이었다.

 시진핑이 등장하자 또다시 기대가 높아졌다. 저장(浙江)과 상하이 등 개방된 연해 지역을 다스린 경험이 있어 사고가 유연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에서였다. 집권 초기 시진핑이 권력을 제도의 광주리 안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을 때 기대는 더욱 커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시진핑은 중국이 이미 중국식 민주의 길을 찾았다고 본다. 서방의 민주는 그저 선거로 주인을 뽑는 선주(選主)에 불과하다. 반면 중국식 민주는 정책결정 과정에 민중을 참여시켜 민중의 이익과 뜻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정책민주(政策民主)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제 필요한 건 사상 무장이다. 이를 위해 시진핑은 ‘핵심에서 바깥으로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먼저 정풍(整風)운동을 당 고위층에서 시작해 중국 공산당 전체로 확대하고, 이를 다시 국민 모두로 확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파트너는 선전업무로 잔뼈가 굵은 류윈산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시작은 지난해 12월 4일 발표된 당8조(黨八條)다. 회의 간소화와 근검절약 등 8가지 지시사항이 당 중앙 정치국 위원들에게 전해졌다. 12월 중순에는 인민해방군에도 금주령이 포함된 군10조(軍十條)가 하달됐다.

 이어 지난 4월 19일에는 전당 차원의 정풍운동 깃발이 올랐다. 모든 것은 군중을 위해, 군중에 의지해, 군중에서 나와서 군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군중노선 교육실천활동이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은 당이 군중과 유리되는 건 형식주의, 관료주의, 향락주의, 사치바람 등의 네 가지 바람 때문이라며 4풍(四風) 반대 운동을 역설했다. 또 이와 함께 문화대혁명 시대를 연상케 하는 ‘거울 보고 옷매무새 똑바로 하며 몸을 씻고 병을 치료하자(照鏡子 正衣冠 洗洗<6FA1> 治治病)’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시진핑의 군중노선은 그저 지시 하달로 끝나는 게 아니다. 시진핑 자신이 지난 9월 초 직접 허베이(河北)성을 찾아 군중노선 교육실천활동의 하나로 그 성의 간부들과 함께 4일 반 동안 자아비판 대회를 개최했을 정도다. 이에 허베이성 성장 등 고위 간부들이 식은땀을 흘렸다는 후문이다. 특히 지난 8월 19일 열린 전국선전사상공작회의는 마침내 정풍운동을 전국민을 상대로 전개하는 시작점이 됐다. 이날 시진핑은 선전사상 부문이 ‘제 역할을 다해 줄 것(守土有責)’을 요구했다.

 얼마 후 인터넷을 무대로 자유와 인권, 민주를 논하던 유명 블로거들이 단속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9월 9일 중국 당국은 인터넷을 이용한 타인 비방 클릭 수가 5000회를 넘거나 재전송이 500회를 넘을 경우 위법이라는 인터넷 비방죄를 발표해 충격을 주었다. 체제에 도전하는 목소리가 나오곤 하는 인터넷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응 전략은 한편으론 부수고 한편으론 세우기(邊破邊立) 작전으로 알려진다. 유언비어 단속을 명분으로 서방의 가치관을 전하는 파워 블로거는 부수고(破) 친정부 학자를 동원해 체제를 옹호하는 목소리를 세우는(立) 방법이다.

 시진핑의 정풍운동은 결국 당 내부에 쌓인 폐단을 처리하고 민심을 다잡음으로써 선대가 싸워 얻은 강산(打江山)을 지켜나가겠다(保江山)는 결의와 다름없다.

차관급 이상 11명 부패 혐의로 낙마

 어느 사회나 그렇듯이 짧은 시간에 민심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반부패의 기치를 높이 드는 것이다. 시진핑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부패척결 운동과 관련해 한편으론 엄숙한 경고음(警告音)을 발하면서 한편으로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행동을 취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부패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시진핑의 목소리는 지난해 11월 총서기 취임 연설부터 나왔다. 당시 그는 “큰 힘을 기울여 부패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며칠 후 열린 중앙정치국의 집단학습 시간엔 “물건이란 반드시 먼저 썩은 뒤에야 벌레가 생기기 마련(物必先腐 而後蟲生)”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의 역사학자 2명을 초청해 중국 고대엔 어떻게 탐관오리를 척결하고 청렴의 기풍을 건설했는지에 대한 학습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월 22일 개최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회의에서 “호랑이든 파리든 모두 때려잡겠다”는 사자후(獅子吼)를 토해냈다.

 이 같은 시진핑을 도와 사정(司正)의 칼날을 휘두르는 인물은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다. 왕은 흔히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듣는다. 그 자신의 탄탄한 실력을 믿고 누구의 파벌에도 속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시진핑과는 문화대혁명 시절 산베이(陝北, 산시성 북부) 지역에서 함께 동고동락한 인연이 있어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다. 자칫 반대파의 도전으로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반부패 투쟁에서 시진핑과 가장 잘 호흡을 맞출 인물이라는 이야기다. 시진핑-왕치산의 반부패 조합이 현재 공을 들이는 건 호랑이 때려 잡기다. 이미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에 대한 재판을 원만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지금은 보시라이보다 더 큰 호랑이 잡기가 거론되고 있다.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이 타깃이다. 이미 그의 석유방(石油幇) 세력에 대한 거세(去勢) 작업이 시작된 상태다. 저우가 처벌될 경우 중국은 장쩌민 시대 이래 형성된 정치국 상무위원과 같은 고위 관료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형불상상위(刑不上常委)’의 관행이 깨지게 된다. 일각에서는 저우 이외에 더 큰 호랑이 잡기에 나설 것으로 예측하기도 한다. 이 같은 사정 바람에 시진핑 집권 이후 지금까지 11명의 차관급 이상 고위 관리가 부패 혐의로 낙마했다. 예년의 6~8명에 비해 부쩍 많아진 수치다. 1978년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건 이후 30여 년 만의 가장 큰 사정 바람이 불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에는 파리 잡기 바람도 불 전망이다. 왕치산은 지난달 16일 회의에서 반부패 투쟁과 관련해 “조기에 잡고 작을 때 잡아야 한다(<6293>早<6293>小)”고 말했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는 법이니 일찌감치 부패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이야기다. 왕치산은 관리들이 “부패를 생각하지도 못하고(不想腐) 부패할 수도 없으며(不能腐) 감히 부패할 수 없도록(不敢腐)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왕은 반부패 운동은 지구전과 섬멸전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속적으로 싹을 자르는 엄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부패를 처벌하고 예방하는 시스템은 11월에 개최되는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유기업 개혁, 기득권층 반발 거세

 중국은 예부터 농업국가였고 경자유전(耕者有田)은 모든 중국인의 꿈이었다.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을 물리칠 수 있었던 원동력 역시 농촌에서 나왔다. 마오는 도시에서의 봉기를 요구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전통 모델을 따르지 않았다. 그 대신 농촌을 근거지로 해 도시를 포위하는 작전으로 대륙의 패권을 쥘 수 있었다. 그러나 건국 이후 마오의 차이나 1.0 경제는 농촌과 농업을 희생해 도시에 중공업을 건설하는 계획경제였다. 마오가 낭만적으로 추진했던 인민공사(人民公社)나 대약진(大躍進) 운동 등은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양산하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덩샤오핑의 차이나 2.0 시대 경제의 특징은 개혁·개방이다. 개방의 절정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이었다면 개혁의 핵심은 농촌에서 시작됐다. 농산물의 사유화를 인정한 농가청부생산제로 인해 중국경제는 다시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시장경제를 도입해 중국경제는 세계 2위의 실력을 키웠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거치는 기간 중국경제는 국유자본과 국가권력이 결합해 이익이 되는 모든 영역으로 손을 뻗쳤다. 그 결과 국유 부문은 커지고 민간 부문은 축소되는 국진민퇴(國進民退) 현상이 나타났다.

 문제는 중국의 성장이 인민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가와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고 대기와 토양, 수질 등 환경 전체가 오염돼 삶의 질은 형편없이 추락했다. 특히 성장의 과실 대부분이 인민 전체가 아닌 일부 권력 집단으로 흘러 들어가 엄청난 빈부격차의 문제를 낳고 있다.

 시진핑의 차이나 3.0 경제는 바로 이와 같은 앞선 시대의 문제점을 해결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려는 것이다. 중국에서 경제는 리펑(李鵬) 총리 이래 총서기의 후원 아래 총리가 맡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기서 시진핑-리커창 조합의 경제팀이 탄생한다.

 시-리 체제는 해법의 출발점을 역시 농촌에서 찾고 있다. 리커창은 2012년 처음으로 ‘새로운 4개 현대화(新四化)’ 방침을 제시했다. 과거 공업과 농업, 국방, 과학기술의 4개 현대화에 빗대어 정보화, 공업화, 도시화, 농업 현대화라는 ‘신사화’ 정책을 주창한 것이다. 핵심은 도시화다. 이는 간단히 말해 농민을 도시민으로 바꾸는 것이다. 2011년 기준으로 51.27%인 도시화율을 매년 0.8%포인트씩 끌어올려 2030년에는 70% 가깝게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린이푸(林毅夫) 베이징대학 교수는 도시화가 중국의 고질적인 농민, 농업, 농촌의 삼농(三農) 문제를 해결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신사화’는 차이나 3.0 경제의 엔진이 될 수 있고, 도시화는 그 엔진을 돌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커창은 이와 함께 시장의 역할을 존중한다. 자연히 국유 부문에 대한 개혁은 불가피하고, 기득권과의 싸움이 예상된다. 지난 9월 말 상하이자유무역시범구가 문을 열었지만 국내외적인 반대에 부닥쳤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국내 세력과 상하이의 부상을 우려하는 싱가포르와 홍콩 등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사회주의의 본질은 빈곤해소, 민생개선, 공동부유 실현이라고 말한다. 일부 특권 계층이 아닌 천하의 이익을 꾀하려는 시-리 체제의 경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길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꿈은 마음속에 있지만 길은 발 아래 있기 때문일까(夢在心中 路在脚下).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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