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가의 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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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인집 식구들과 이웃집이 인심 좋고 무던하다고 하여 여러 가구가 오랫동안 오손도손 살아왔다. 그런데 석이 네가 이사를 가고 미 경이 네가 이사를 갔다. 이유인즉 우물물이 번해서 물맛이 좋은 곳으로 옮겨야겠다면서 가족들의 건강을 위해서 섭섭하지만 어쩌겠느냐는 것이다. 물 맛 좋기로 이름난 우물인데 올 여름 들어서 갑자기 변한 것 같다. 옆에 개천이 흐르고 우물이 깊지를 않기 때문일까? 가끔 벌레가 뜨고 장마철엔 객 수가 스며들어 혼탁한 물 때문에 큰 걱정이었다. 그래서 허드렛물로만 사용하고 식수로는 옆집 펌프 물을 빌어 쓰자니 여름철이라 씀씀이가 헤픈데다가 초롱으로 길어 쓰기 때문에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다.
주인집도 이 눈치 저 눈치 알고 우물물을 걱정했지만 차일피일 하다보니 그 동안 아들딸 낳고 별탈 없이 지내던 한집 식구를 본의 아니게 떠나보내게 되는 것 같아 매우 서운한 모양이다.
옛날에 우물물이 맑고 깨끗해야만 그 마을에 미인이 나고 그 마을 인심도 우물 맛이 좋고 나쁘고 에 달려있다고 하였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갈증을 면하기 위하여 물 한 그릇 대접하는 아낙 앞에서 어, 물맛 참 좋은 곳이로군! 하며 향긋하고 시원한 물맛을 칭찬하면 우선 그 마을 첫 인상은 만점이라 할 수 있다. 우물 맛을 생각하며 가끔은 그 마을 풍경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 만큼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우물물의 비중은 여러 면에서 평가되지 않을까? 이제 주인집이 앞장서고 모두가 서둘러 우물주변을 콘크리트로 하여 위생적으로 개량하고 지붕도 새로 하여 옛 우물 맛을 되찾게 되었다. 우물 맛을 오래 보존하고 온 가족의 건강을 살피기 위하여 언제나 우물가를 깨끗이 다듬어야겠다. 콘크리트가 깨어져 우물이 스며들지 않는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빨래를 걸쳐놓지는 않았었나? 이제 소갈머리 없이 훌쩍 떠나간 석이엄마와 미 경 엄마가 그리워진다.
최기순(경기도 화성군 오산 읍 오산4리603 임종복씨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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