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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벽화든 신라고분 발굴|묘지명에 연대·벼슬 세 각 뚜 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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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영주=이종석 기자】삼국시대의 아주 희귀한 벽화와 지석이 함께 간수돼 있는 신라고분이 경북 영주인근 야산에서 발굴됐다. 진홍섭 교수가 이끄는 이화여대 박물관조사반은 20일 영주 군 순흥면 읍내 리 뒷산의 한 석실 군을 조사, 정면과 천장에 온통 고구려 고분벽화와 비견되는 사신 도와 연화 문이 갓 붓을 뗀 듯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특히 그 주인공의 이름·벼슬·연대를 밝힌 묘지명을 확인함으로써 커다란 성과를 올렸다. 신라영토 내에서 처음 발견된 이 벽화고분은 이로써 신라의 몇 폭 회화작품을 남기게 됐고 특히 전례 없는 명문이 나타나자 조사반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현실 연도의 문 비로 해 닫은 판 석에 음 각한 묘지명은『을묘년 어숙지술간』의 8자. 이 지방의 통치자인 술간벼슬 어 숙을 을묘 년에 장사지낸다는 내용이다.
「지」는 존칭을 표하는 글자로 발굴관계자들은 명문이 간지부터 시작됐고 이름 밑에 존칭 호를 썼으며 고졸한 세 각 글자는 경주남산발견의 신성 비(서기 570년)와 매우 비교된다는 점에서 6세기후반, 즉 595년 신라진평왕 17년에 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벽화고분 안에는 상당했을 부장품이 이미 도굴돼 버려 현실내부가 텅 비어 있었다.
당초 이 발굴은 40여 년 전 도굴될 때 봤다는 마을사람들의 말을 근거로 조사, 현실 서쪽 벽의 도굴 갱을 먼저 파고 들어갔다.
순 흥 읍내 서북쪽을 둘러싼 비 풍 중턱에 위치한 이 고분은 거대한 봉토 밑 4m에 석실이 뭍 혀 있었다.
돌덩어리의 한 면을 곱게 다듬어 축조한 현실은 약 4×3m의 장방형에 높이 2m정도. 그리고 남쪽에 길이 2·5m의 연 돌을 내었으며 판 석으로 내문 비를 달았고 그 바깥에 쪼갠 돌로 견고하게 막음 했다.
현실내부는 돌 결이 전혀 드러나지 않도록 회칠을 하고 그 위에 주·청·흑색으로 그림을 그리되 십이지에 의한 사신 도이고 청장에는 강서고분에서 보이는바와 같은 고 격의 연화 문이 하늘을 떠드는 듯 가득 피어 있다.
천의 자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듯 짙게 하늘의 신장을 표현한 사신 도는 다만 문 비의 것만이 완전할 뿐, 현실 세 벽의 것은 도굴 직후『먹으면 좋다』는 주민들의 속셈 때문에 알아보기 어렵게 긁혀져 버렸다.

<"신라 지석발견은 큰 수확">
▲이병도 박사=실제로 확인하지 못해 무엇이라 말할 수 없으나 전해진 자료로 본다면 이 벽화와 지석은 문학사적으로 아주 귀중한 것이다. 아직까지 신라벽화는 나온 것이 없었고 단지 단 석 산의 돌 벽화가 조금 그림으로서 알려졌지만 색채가 분명한 벽화가 나왔다면 이것은 최초의 발굴이다. 더 우기 신라고분에서 지금까지 문자가 새겨진 그릇정도가 고작이었는데 지석이 나왔다면 큰 학문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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