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여름옷|김경오 <여류 비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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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작년 이맘때 내가 해마다 참석하는 세계 여류 비행사 대회에 간다고 우리 집에서 몇몇 손님을 청했었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짧은「스커트」에 「블라우스」차림으로 왔다갔다 일을 보고 있는데 어쩐지 아기아빠가 눈치가 이상하더니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여보, 그 치마 안되겠어. 긴 것으로 바꿔 입을 수 없어?』 그렇다고 금방 갈아 입으면 오히려 손님들을 당황하게 할 것 같아 정말 불편하게 하루를 보냈다.
그 이후부터 나는 치마길이를 조금씩 내려 입기로 했다. 더운 때 집에서 지내다보면 조금이라도 더 노출을 하고싶고 모양보다는 편한 것을 찾지만 최소한 남편에게 실례를 하지 않을 정도는 지키고 싶다.
그리고 아기 아빠도 아무리 덥더라도 짧은 바지에「노타이·샤쓰」 정도의 차림을 하여 우리는 아직까지 「데이트」 시절의 사이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요즈음 내가 즐겨 입는 블라우스는 미국에서 여자 비행사들을 위해 특별히 짜낸 비행기 무늬가 프린트 된 목면인데 목둘레를 약간 넓게 파고 소매 없이 내가 만든 것이다.
「스커트」는 대개 짙은 단색으로 옆을 트거나 하여 편한 「스타일」을 택한다. 아직 나는 한번도 집에서 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다. 웬일인지 여자다운 멋이 없는 것 같아 싫어한다. 아마 내가 바지를 입고 일해야하는 비행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국 유학 시절 익혀둔 바느질 솜씨로 우리 보령 (5)이와 지령 (2)의 옷은 거의 내가 만들고 있다. 본을 뜰 필요 없이 그냥 넓게 만들어 걸치는 「스타일」인데 아이들은 이것도 귀찮다고 아예 벗고 지낼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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