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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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의 유력지 A신문은 『기묘한 사건』이라는 표제의 기사를 한 토막 싣고 있다. 무엇이 그리 기묘할까.
-『한국에서 검사가 판사를 체포하겠다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묘한 사건」이 일어났다.』
예의 「사법 파동」이 이웃 나라의 신문지상에까지 비화(?) 한 것이다. 어떤 신문은 거의 전면에 걸쳐 상보하고 있다. 『한국판 「킬러」 사건에 대한…』 운운하는 구절도 눈에 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건망증에 새삼 찬물을 끼얹는 것 같기도 하다.
일본 신문들이 기묘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판사가 피고의 처에게서 출장 여비로부터 주식비에 이르기까지 받아 쓴 것을 비난하는 소리보다는 오히려 부득이한 일이라고 동정하는 기미가 역력한 데에 그들은 놀란다. 이상하다는 것이다. 도리어 일본 기자는 검사가 비난받는 사례들을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다른 사건엔 미지근하면서, 어째 이번 그 사건은 그렇게 쾌속 처리를 했을까.』
『여행에서 있었던 ××관계까지 들춘 것은 너무 하지 않은가.』 이런 등등이다.
바꾸어 생각하면 기묘함 것 같기도 하다. 검사가 판사를 구속하겠다고 벼르는 일이나, 향용을 받은 판사는 동정을 받고, 그를 힐책하려는 검사는 거꾸로 그렇지 못한 처지가 된 것 등은 상식으론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히 우리의 현실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영국 사람들은 수상이 지나가면 앉은 채로 목례를 하고 말지만 판사가 지나가면 일어나서 경례를 한다는 일화가 있다. 대만에서는 어떤 판사가 피고의 아내와 정사를 맺어 사회의 모진 지탄을 받고 법 창에 매장된 일이 있었다. 오죽하면 유럽엔 『판사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냉혈한」이라는 뜻이기보다는 사리에 너무 밝다보면 얼굴이 붉어질 일이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물며 가슴 붉어질 일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문제의 판사들에게 동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로 기묘한 현실임엔 틀림없다. 왜 그럴까?
법조인들은 차제에 옷깃을 여미고 그 「기묘한 현실」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판·검사 사이에 설왕설래한 사실들을 놓고 우리의 법조인들을 존경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존경을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지 않도록 강요당하는, 오히려 역설적인 상황이다.
판·검사는 서로 국민의 존경을 받는 「보완의 관계」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 검사 측이 불을 지른 격하 경쟁은 사법 파동 아닌 사법 비극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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