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1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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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기이하게도 우리는「마이크로」(미시)의 세계와 「마크로」(거시)의 세계에 나란히 살고 있다. 오늘의 세계 전체가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을 아울러 좇고 있는 때문이라 할까.
법의 존엄성과 공정성을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사법 파동도 벌써 6일째로 접어들었다. 그 발단은 두 법관이 3만원 꼴의 향응을 받았다는 혐의로 고발된 데 있었다.
같은 시기에 달세계에서는「문·버기」(moon buggy)란「지프」차가 달렸다.
이 차는 길이 3m, 폭 1.8m, 무게 2백㎏. 그 모양은 「지프」를 크게 만든 정도이다.
그저 조립식이라는게 다르다. 「타이어」가 「고무」제가 아니라 「피아노」선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동력은 두개의 전지가 맡고 있다. 적재량은 보통 승용차의 2배가되는 1천 「파운드」.
이런 달 차의 값이 약 8백만「달러」. 그러니까 지상을 달리는 최고급 승용차 값의 약 1천배 꼴이나 된다. 그러면서도 최고 시속은 고작 12㎞ 정도이고 달 표면에서의 안전 속도는 8㎞ 밖에 안된다. 그것도 40㎞ 정도를 달린 다음에는 그냥 달에다 버리고 올 차다. 달에서 인간이 탄 자동차가 달린다…이런 환상적인 얘기의 실현을 위해서라면 어쩌면 1천만 「달러」도 싼 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거시적인 얘기를 위해서는 또 몇 십분의 1초, 몇 백분의 1㎝를 다투는 미시적인 사실들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로버」 1호 차안에도 거의 위치를 정확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컴퓨터」의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오늘날 세계는 어떤 의미에선 모든게 세밀화·미소화 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속에서는 인간까지도 미소화 하기 쉽다. 그러면서도 또 동시에 거시적인 것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오늘의 문명이다. 사람들은 「마이크로」의 세계에서만 살수는 없다. 그렇다고 「마크로」의 세계에만 의지하여 살수도 없다. 「마이크로」와「마크로」의 두 엇갈리는 세계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우리에게는 가장 큰 과제인 것도 같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칫하면 미시적인 것에 너무 집착되는 수가 많다. 미시의 세계에서 문제를 찾아내는 엄밀성은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거시의 세계를 잊게 된다면 그처럼 딱한 일도 드물 것이다.
「로버」1호는 무엇이 「마이크로」이며, 무엇이 「마크로」 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다. 그 이외에는 적어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별다른 뜻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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