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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판사의 사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검찰의 현직 법관에 대한 잇단 구속영장신청, 법관들의 집단사표제출 등 이번 사법파동은 이상 상태임에는 틀림없다.
10여년 전에 법복을 벗었건만 이번 사태를 아직도 법관인 것 같은 심경으로 되새겨 보았다. 이번 사건은 검찰이 범죄의 확증을 잡았다면서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현직 법관에 대해 두 번씩이나 구속영장을 신청했기 때문에 형사소송법 원리에 어긋난 것이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지만 ①법관은 절제를 의심받는 행위를 했고 ②검찰은 겸허한 빛이 없이 독선에 흘렀으며 ③변호사는 법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 흠이 있다고 생각된다.
현직 판사로 있을 때는 법관의 직무가 어렵다는 것을 심각하게 느껴보지 못했으나 변호사생활 10여년에 법관의 직무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됐다. 일방당사자의 대리인으로서 판결을 보게되니까 더욱 채만의 공정성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법관의 생명에서 공정성을 빼놓을 수 없으며 이에 관련해서 막강한 권력을 갖고있는 검찰은 겸허해야 하며 변호사는 봉사의 경신이 투철해야한다. 법관은 인생관이 확립되어 선과 악, 시와 비를 명확하게 단정할 수 있는 정의감이 있어야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으며 이 눈치 저 눈치를 보며 타협적인 판결을 하는 것은 법관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이다. 특히 법관은, 국민의 재산과 신체를 보호하는 중책을 갖고 있다는 긍지를 가져야만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긍지를 갖지 못할 때는 사법부를 수호하려는 열의가 없어지게 되며 요즘 법관의 이직 율이 높은 것도 법관의 긍지를 못 갖기 때문인 것이다. 양심과 법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어 사표를 냈다면 이를 나무랄 수 없으나 사법부의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재만의 공백기간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극한적인 신분상의 행위는 자중해야 한다. 전에는 법관들이 정년퇴직 시까지 사법부를 지키는 것으로 알고 좀처럼 사직하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런 열의가 없으면 『내 스스로가 사법부를 지킨다』는 생각이 없는 꼴이 된다. 정년퇴직 시까지 법관을 계속할 의사와 자신이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변호사로 출발해야지 경험을 쌓기 위해 법관이 된다는 것은 위험한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다.
판사가 함께 출장 가는 변호사로부터 대접을 받는 것이 판례이며 의례적이라고 하나 법관의 자세로서는 있을 수 없으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없어져야 한다. 법관 스스로가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변호사들과의 쓸데없는 접촉을 삼가야 한다.
법관이기 전에 사람이기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유혹이나 압력에 충격을 받게되겠지만 이에 굽히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사법권을 수호하는 왕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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