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예측 못할 파장 …법관수사 파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검찰이 현직법관 2명에 대해 수뢰혐의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사건은 조야 법조계는 물론 일반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서울형사지법판사전원의 사표제출에 이어 서울민사지법판사들까지 이에 동조할 기세로 번진 이 사건은 정치문제로 등장할 가능성마저 엿보이고있어 사법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진통을 겪게 되었다. 28일 상오 0시40분 1차로 구속영장이 신청되고 이날하오 2시20분 영장이 기각되기까지는 검찰과 법원은 표면상의 안정은 잃지 않았으나 굳은 표정으로 침통한 분위기에 싸였었다.
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이 나돌자, 서울지검은 긴급간부회의를 소집, 영장 재 신청 여부 등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하오 3시 반부터 서울형사지법판사들은 726호 판사실에 모이기 시작, 일괄사퇴문제를 두고 격론을 벌인 끝에 결과적으로 법관전원이 사표를 제출, 사법사상 처음인「법관집단사퇴」로 번졌다.
뒤이어 민사지법판사들의 동조결의, 참여서기 등 형사지법 일반직원들의 사퇴여부논의 등 조용하기만 했던 사법부에 벌집을 쑤셔놓은 듯한 바람이 일었다.
사법부의 존폐론까지 들먹일 정도로 여파를 몰고 온 이번 사건은 오랫동안 쌓여온 검찰과 법원사이의 불신풍조에서 싹튼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검찰이 힘을 기울여 적발한 중요사건의 피의자 또는 피고인들이 적부심, 보석, 집행유예나 무죄판결로 풀려나갈 때마다 검찰은『몇몇 판사들 때문에 수사를 할 수 없다』는 불만을 표시해왔으며 법원은『사건기록을 살펴보면 상부선이나 고위층에 대한 수사가 이유 없이 단절되어 재수 없이 걸려든 피의자나 피고인에 대해서만 구속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고 미흡한 수사에 반발해왔다.
이 같은 불신감정 속에서도 그 동안 큰 마찰이 별로 없었던 것은 같은 울타리 안에서 항시 마주 대해야 하는 사무의 성질과 퇴직 후에는 모두 변호사 개업을 하기 마련인「같은 뿌리의 다른 가지」의 가족적인 특성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만 해도 검찰의 내사는 20여일 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서울대생들에 대한 전원무죄판결(6월29일),「다리지필화사건」에 대한 무죄선고(7월16일)가 있은 후부터는 일부 판사들에 대한 검찰의 내사소문이「알려진 비밀」로 검찰과 법원일각에서 맴돌았으며 내사를 받은 판사자신도 알게 되었다.
검찰이 부정의 혐의가 짙은 일부 법관들에 대해 내사를 한 것은 여러 차례가 되지만 그때마다 법원자체의 인사조처 등으로 결실을 보지 못했었다.
검찰과 법원사이의 불신감정은 김대중 전 신민당 대통령 후보집 폭발물 사건에 관련, 구속된 김씨의 조카 홍준군이 지난 2월 적부심에서 석방될 때부터 고조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상반된 태도는 견해의 차가 크다기보다는 보는 관점이 달라 극한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검찰은『반공법 등 위반피고인 가족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향응을 받은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기각된 영장에 대해 범죄의 기본적 사실이 변동이 없으며 새로운 증거가 없는데도 다시 신청을 했고『영장기재의 혐의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현금을 주고받은 것이 아니며 법관의 품위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현직법관을 구속하려고 하는 검찰의 수사태도가 의심스럽다』는 것이 법원 측의 주장이다.
판사들은 특히 이 사건뿐만 아니라 일련의 무죄 판결이 있은 뒤 검찰에서 무죄판결을 내린 재판부에 대해 내사를 하고 있는 것은 법관들을 공포분위기로 몰아넣고 정당한 재판을 방해하여 사법부 독립에 중대한 위해를 가하는 것이며 보복조처라는데 의견을 모아 집단사표제출로까지 나가게 된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한 재야법조인들의 의견은『계류중인사건의 변호인으로부터 여비보조나 향응을 받았다면 범죄 구성요건상 수뢰가 인정되지만 지금까지 범죄라고 인식할 수 없을 만큼 관례적으로 되어온 조그마한 일을 가지고 강제수사를 벌여야만 하는 검찰의 태도가 각박하며 수사의 동기가 의심스럽다』는 것으로 집약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두드러진 문제점으로 나타난 것으로는 ①칼자루를 쥔 검찰의 강경일변도의 수사태도 ②사법부 불신풍조의 근간을 이루었던 법관과 변호사들의 불미스런 접촉풍문이 구체적 사건으로 표면화했다는 것과 ③지금까지의 법관 상에서 벗어나 집단행동을 취했다는 점이 손꼽히고 있다.
『썩었다면 검찰이 더 썩었다. 검찰 자신이 정화를 한 뒤에 부정에 손을 대라』는 극소수 재야법조인들의 이견도 있을 만큼 법관들의 거센 반발에도 이해가 가지만, 사법부의 독립이란 집단행동으로서가 아니고 법관 개개인의 양심과 법률에 따라 소신껏 내리는 판결을 통해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이 재야법조인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 연초에 일어났던 사법부 정풍운동에서도 지적된 법관과 변호사와의 밀착된 어울림은 계루중인사건의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사법부 불신풍조의 싹을 트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켜야한다는 소리가 높다.
국민들도 극소수의 법관을 제외하고는 사법부가 가장 청렴 강직하다고 믿고있으나 사법부가 국민의 기본권수호에 대한 최후의 보루가 된다는 점에서 풍문 하나 하나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번 사건이 법관의 자세를 가다듬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있는 것이다.
재야법조인들은 보복의 인상을 주는 일부 법관들에 대한 내사를 중지하고 기각된 영장을 다시 청구하는 강경일변도의 수사태도를 버리는 검찰의 자성과 일괄사표제출이라는 집단행동을 철회하는 법관들의 이지적인 행동으로 사태수습의 실마리를 찾아야한다는데 의견을 기울이고 있다.
부산에 휴가중인 민복기 대법원장이 상경하는 대로 법관들의 집단사표제출사태가 어떤 방향으로든지 일단은 수습되겠지만 검찰과 법원사이의 근본적인 갈등이 과연 해소될 것인지, 또 이번 벌어진 극한상황의 뒤처리에 국민들은 비장한 관심을 갖게됐다.<심준섭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