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배명복 칼럼

변한 듯 안 변한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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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지난주 베이징에 다녀왔다. 한국의 동아시아재단과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이 공동주최한 ‘제1회 베이징대 한·중 대화’에 참석하고,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과도 만났다. 특히 한반도 정책을 다루는 중국 공산당 핵심 이론가들과의 대화는 유익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그들의 솔직한 의견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시진핑(習近平) 시대를 맞아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6월 방중(訪中)을 계기로 한·중 양국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평양에 대한 베이징의 시각과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기대 섞인 분석이 서울에 많다. 하지만 적어도 현 단계에서 그런 기대는 한국의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에 불과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서울의 잣대로 베이징을 재단하는 데서 비롯된 환상이고 착각일 가능성이 크다.

 중국 공산당 관계자들도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에 적극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착시(錯視)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지적이었다. 중국은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같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려 냉정하게 대응하고 있을 뿐이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있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기본 입장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고 중국 측 관계자들은 말했다. 특히 1961년 체결된 ‘중·조 우호조약’에 입각한 북·중 친선의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방중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이 전술적 차원을 넘어 전략적으로 변화했다는 주장에는 논리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 측의 한 관계자는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천하절경으로 이름난 장시(江西)성의 루산(廬山)을 찾았다가 남긴 칠언절구(七言絶句)의 한 구절을 인용해 중국의 대북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없음을 설명했다. ‘원근고저각부동 불식여산진면목(遠近高低各不同 不識廬山眞面目: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 처한 곳마다 형상이 달라 루산의 진면목을 알기 어렵다는 뜻)’이란 구절 말이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루산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도 이를 각자 자신의 처지에서 바라보고 변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는 의미다.

 말을 바꾸면 북한 체제의 붕괴 위험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송유관을 틀어막고, 식량 공급을 중단하는 등 극단적 방법으로 북한에 압력을 가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베이징의 실상을 모르는 사람들의 한가한 몽상이란 얘기다. 중국 측은 또 핵 개발 명분으로 북한이 내세우는 안보 우려를 해소해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라고 강조했다. 6자회담이든 양자회담이든 미국과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까지가 중국의 역할이지 그 이상을 중국에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이 염불처럼 읊어대는 ‘중국 역할론’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이었다.

 중국 측 관계자들은 북한 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에 일정한 수준의 긴장이 유지되는 것이 전략적으로 미국에 이익이란 것이 워싱턴의 판단이라는 인식도 드러냈다. 동아시아 안보를 위한 역할 분담에 일본을 끌어들여 미국의 군사적·재정적 부담을 줄일 수 있고, 한국과 일본에 계속해서 고가의 첨단 군사장비를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는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은 핵시설을 계속 가동해 핵물질의 양을 차곡차곡 늘리고 있다. 4차 핵실험을 하게 되면 북한 핵의 무기화 능력은 대폭 증대된다. 까다로운 선행조치 이행을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내세우면서도 미국은 느긋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처지가 못 된다. 실효성도 의심스러운 킬체인과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 체제 구축에 막대한 혈세를 쏟아붓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는 말은 옳다. 그래도 대화를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대화 재개를 위해 한국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미국이 요구하는 선행조건의 문턱을 낮추고, 북한은 이를 받아들여 협상이 재개될 수 있도록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외교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박근혜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성패가 여기에 달렸다. 다음 달 초 워싱턴과 베이징 방문에 나서는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의 어깨가 무겁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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