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집단적 자위권 원하면 과거사 반성부터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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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처음으로 공식입장을 밝혔다. 지난주 미국을 방문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반도 주권 행사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입장을 미국에 전달한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안보 구도의 큰 틀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반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수용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추진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이 적의 공격을 받았을 때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에 나설 수 있는 권리다. 그동안 일본은 평화헌법을 내세워 권리 행사를 유보해 왔다. 그러나 전후 체제의 족쇄에서 벗어나길 원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헌법 해석의 변경이나 개헌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로 방침을 정한 데 이어 미국도 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하면서 이 문제는 동아시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일본은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 중국의 군사력 증강을 명분으로 집단적 자위권 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변신하고, 나아가 재무장을 통해 군사대국화 행보에 박차를 가하려는 의도임은 불문가지다. 심각한 재정난 속에서도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은 동아시아 안보에 있어 일본의 역할 확대를 바라고 있다. ‘적극적 평화주의’의 깃발 아래 아베가 추진 중인 일본 역할 확대론에 대해 영국이나 호주도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유엔 헌장에도 나와 있는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을 일본이 행사하는 것 자체에 반대할 명분은 없다. 하지만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예상되는 최우선적 상황은 한반도 유사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로선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 실장이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때 한반도 주권 행사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입장이 반영돼야 한다고 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일 것이다. 한국의 동의 없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개입하는 사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사과와 반성 없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추진되고 있는 점이다. 일제의 군국주의적 침략의 피해를 본 주변국들로서는 특히 우려가 클 수밖에 없다. 일본의 재무장과 군사대국화가 군국주의의 부활로 이어져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부채질할 가능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우려를 이해한다고 말만 해서는 안 된다. 분명하고 확실한 어조로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전제될 때 우리는 비록 흔쾌하진 않더라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