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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해진 카톡 … 10대들 아찔한 사랑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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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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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의 대리고백

‘카톡 대리고백 방송’에서 고백 대상의 이름과 사진이 시청자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널 좋아하는데….”

 22일 오후 대학생 이모(24·여)씨는 안모(24)씨로부터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카톡) 문자로 사랑 고백을 받았다. 이씨는 안씨의 이름으로 온 카톡 문자에 “사귀자”는 답장을 보냈다. 그러나 사실 이씨에게 문자를 보낸 사람은 안씨가 아니었다. 안씨는 한 인터넷 방송의 ‘카톡 대리고백’ 서비스를 이용했다. 방송 진행자 J씨(25)에게 고백을 대신 맡긴 것이었다.

 J씨는 안씨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이씨에게 문자를 날렸다. 대리 고백은 인터넷으로 생중계됐다. 시청자 3500여 명이 이 방송을 통해 카톡 문자가 오가는 장면을 지켜봤다. 이 과정에서 이씨의 개인정보와 사진 등이 공개되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천 명에게 민감한 사적 정보와 얼굴이 알려진 것이었다. 이 방송에는 “여자 얼굴이 예쁜데 몸매는 어떤가요?” 등 이씨 입장에선 성희롱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댓글 수십 건이 달렸다. 하지만 이씨는 자신이 주고받는 카톡 문자가 공개되는 사실 자체도 몰랐다. 자신에게 고백을 하는 상대가 안씨가 아닌 J씨라는 사실도 알 수 없었다.

 #카톡의 애인 대행

한 인터넷 포털 카페 회원이 ‘카톡 애인’ 사이인 남성과 카톡 대화를 나누는 장면.

 여중생 강모(15)양은 23일 새벽 카톡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다. 한모(19)군이 자신의 성기까지 드러나 있는 알몸 사진을 보냈기 때문이다.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한군은 네이버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양과 ‘카톡 애인’으로 지내기로 한 사이였다. ‘카톡 애인’이란 최근 10~20대들 사이에 유행하는 놀이로 카톡 상으로만 애인 행세를 하는 상대를 뜻한다. 한군과 강양은 카톡 상에서 서로를 “여보”라고 불렀다. 페이스북 등에서 애인인 것처럼 다정한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한군이 알몸 사진을 보내면서 관계가 틀어졌다. 강양은 최근 경찰에 한군을 고소했다.

 카톡을 이용한 대리고백부터 애인 대행까지…. 스마트폰 메신저가 생활화된 10~20대 사이에 카톡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카톡 만능주의’가 파고들고 있다. 남녀의 직접 소통을 통해 이뤄지는 사랑의 영역까지 스마트폰 메신저로 해결하려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27일 현재 한 인터넷 방송 사이트에는 ‘카톡 대리고백’ 서비스를 하는 방송 10여 개가 올라와 있다. 방송 진행자들은 자신을 여성을 유혹하는 ‘연애 아티스트’라고 소개한다. 고백 성공률이 95%를 넘는다고 홍보하는 방송도 있다. 이 사이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B방송은 최근 1년간 누적 시청자 수만 740만 명(27일 기준)을 넘었다.

 대리고백 방송은 카톡을 통해 고백이 이뤄지는 전 과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방의 동의 없이 이름·사진 등이 공개되기도 한다. 상대방의 거주지와 출신 학교, 가족관계 등 사적인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도 높다.

 청소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카톡 애인’도 성추행 등 위험에 노출돼 있다. 최근 네이버 등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카톡 애인을 구하는 카페가 성행하고 있다. 가입자 수만 12만 명이 넘는 한 카페엔 하루 300건 이상씩 카톡 애인을 구한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러나 상대방과 연락처와 개인정보·사진 등을 교환하고 애인처럼 지내면서 성범죄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카톡을 통해 상대방의 개인정보를 유출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카톡을 이용한 음란물 사진 유포의 경우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이용자는 문제의 심각성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리고백 방송 진행자 B씨(21)는 ‘상대 여성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건 문제 아니냐’는 기자의 물음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 고백만 성공하면 결과적으론 나쁠 게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숙명여대 이명화(사회심리학) 교수는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가깝게 지낸 청소년 사이에선 이성교제, 고백 등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까지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높다”며 “개인 신상과 음란물이 무차별 유포될 수 있는 스마트폰 메신저의 문제점을 사용자들이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국희·장혁진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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