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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통신] 차, 그 남자를 비추는 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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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그를 향해 다가간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근육질, 건드리면 당장 튕겨나갈 듯 날렵한 몸매,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눈…. 그에게 살짝 손을 뻗는다. 딸깍.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결코 가볍지도 않은 소리로 나를 맞는다. 그에게 안기는 순간, 그는 나와 하나가 된다. 나를 바라보는 이들이 내뱉는 나즈막한 감탄, 안그런척 감추지만 결코 가려지지 않는 부러움 섞인 시선. 짜릿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아, 이제 그만 그와 헤어져야 할 시간. 그를 놓아주는 순간도 매혹적이다. 내가 바라는 대로 완벽하게 움직이다 내가 모든 걸 멈추는 순간, 그도 지긋이 눈을 감는다. 그의 이름은….

BMW 5시리즈의 내부 모습. [BMW]

차, 그 남자를 비추는 거울

자동차는 이 땅에 바퀴가 닿는 순간부터 한국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 아니, 1886년 독일에서 탄생한 그 순간부터 전 세계 남자가 품는 욕망의 대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동차가 곧 나, 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와 권력을 가장 빠른 시간에 과시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말이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회사원 구정회(44)씨는 뱃살을 빼려고 피트니스센터에 다닌다. 건강을 위하거나, 아니면 누구 앞에서 몸매를 드러내려는 게 아니다. 순전히 차에 부끄럽지 않은 몸을 갖기 위해서다. 결정적 계기는 그가 즐겨찾던 가로수길 한 바의 바텐더가 한 말이었다. 그가 BMW 5시리즈를 타고 바 앞에서 내리는 걸 본 그 바텐더는 딱 한마디 했다. 근육질 차와 오너가 영 안울린다고. 그는 당장 피트니스센터 회원권을 끊었다. 그렇다. 자동차는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과도 같은 것이니까.

 그가 유별나게 차를 사랑하는 나르시스트라서가 아니다. 아마 남자라면 대부분 이런 기분 알 거다. 김광천(39·금융업)씨가 지금 BMW 5시리즈 디젤과 스포츠 컨버터블 Z4를 동시에 갖고 있는 것도, 또 지금까지 BMW만 7대를 두루 섭렵한 것도 다 이런 이유다. 그는 말한다. 여자는 럭셔리 백과 구두 등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게 많지만 남자는 과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자동차라고. 남자란 그가 타는 자동차로 지위와 품격을 판단받는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 남자(회원 수 9만 9350명인 네이버 동호회카페 ‘클럽BMW’의 남성 회원)에게 물었다. 남자에게 자동차란 무엇이냐고. 가장 많은 답변이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자동차의 원래 용도인 이동·운반 수단이라는 답을 앞질었다. 남성 대다수가 자동차를 ‘실용적인 동시에 상징적인 물건’(『로빈슨 크루소의 사치』,박정자 지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사실 자동차의 상징성은 현대인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자동차는 이 땅에 처음 출현한 당시부터 남자를 매혹시켰다.

국내에서 자가용 승용차를 처음 소유한 남성은 고종이다. 1903년 황제 즉위 40주년을 맞아 포드 오픈카를 들여왔다. 원조 오너는 고종이지만 그의 아들 순종이 차를 더 사랑했다고 한다. 외국 공관 파티나 모임에 갈 때 꼭 자동차를 이용했다.

 뿐만이 아니다. 이미 1910년대부터 자동차는 이 땅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이자 가슴을 뛰게 하는 마법같은 존재였다. 광구 100개를 소유했던 거부(巨富) 최창학은 당시 1만 8000원(현재 가치 21억 6000만원)짜리 뷰익 리무진을 탔다. 벼랑에서 전복 사고가 났는데 차에 탄 사람 모두 멀쩡해 장안의 화제가 됐다. 가마 타기도 쉽지 않았던 숱한 조선의 남성들이 이 소식을 듣고 가슴 설레여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007카나 배트맨카처럼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차가 된 것’(이호근 교수)이다.

 수입차 밖에 없던 국내에 자동차산업을 처음 연 건 1955년 미국산 지프를 조립해 관용으로 납품한 시발자동차회사였다. 그리고 63년 기아산업, 67년 현대자동차가 설립됐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남자의 로망은 그저 마이카(my car), 즉 자가용에 머물렀다. 그 때 자가용 한 대 갖는 걸 꿈으로 삼았던 소박한 남성들은 90년대 자가용이 대중화한 이후엔 값비싼 수입차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왜일까.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가 말한 것처럼 자동차는 크기나 가격과는 또 다른, 당장 눈에는 보이지 않는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한 사회적 지위를 결정해 주는 등급이기 때문이다. 현대 소비사회는 내 지위가 고정된 계급사회가 아니다. 계급의 사다리를 올라가면 지금보다 한 등급 위의 세상이 펼쳐진다. 그 세상에 자연스레 동화되려면 거기에 맞는 덕목을 갖춰야 한다. 그게 그때는, 그리고 아마 지금도 고급 브랜드 수입차일 것이다.

 이렇게 그 자체로 사회적 특권이 부여돼있는 수입차 가운데서도 독일차, 특히 BMW는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었다.

 남성잡지 젠틀맨(Gentleman)의 설문결과(35~45세 남성 대상) 절반 이상(52.3%)이 향후 구입하고 싶은 차로 수입차를 꼽았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BMW 브랜드(14.3%)를 원했다. 브랜드가 아닌 개별 차종별로는 현대 제네시스(11.3%)가 가장 많았지만 수입차 중에선 BMW 5시리즈(3.3%), BMW X5(2.7%), 아우디 Q5·벤츠 E클래스·BMW 7시리즈(각 2%) 순이었다.

 이처럼 BMW는 젊은 남성, 특히 전문직이 좋아하는 차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520d 모델을 타는 전용욱(35·의사)씨도 그런 이유로 BMW를 택했다. 벤츠는 다소 연령대 높은 층이 선호한다는 이미지가 있는 반면 BMW는 젊은 이미지라 그런지 또래 의사들도 대부분 타고 다닌다는 거다. 30~40대의 젊은 층 남성의 BMW선호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BMW 구매자 40%가량이 40대이고, 30대와 50대가 15%씩, 60대와 20대가 나머지 정도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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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가 뭘까. 아니,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걸까.

 사실 과거엔 대기업 오너나 대형 병원 의사, 연예인 등 남의 시선을 이겨낼 수 있는 이들만 수입차를 탔다. 물론 재력은 기본이었다. 차량 크기가 현대 아반테 정도인 BMW 3시리즈 가격이 대형차 그랜저보다 비싸던 시절 얘기다. 하지만 2007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수입차 가격이 낮아지고 다양한 할부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국산차와의 가격 차가 좁혀진 거다. 강남 도산사거리 BMW 전시장에서 만난 경력 13년차 딜러인 오동찬 코오롱모터스 차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좋은 차에 대한 욕망이 좀더 대중화하며 2000년대 중후반 무렵부터 40~50대의 일부 성공한 이들만 찾던 수입차를 30대 회사원도 할부로 구매하기 시작했다고. 때마침 현대가 제네시스를 옵션 등을 포함해 5000만원을 웃도는 가격으로 출시하는 등 가격을 크게 올리자 시선이 수입차로 쏠렸다. BMW 5시리즈나 벤츠 E시리즈가 더이상 남자의 로망에 머물지 않고 어쩌면 내 손에도 쥘 수 있는 현실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BMW를 생애 처음 타는 사람일수록 과시욕이 강하게 작용하는 건지도 모른다. 여성들이 자꾸 자기 손을 얼굴 위로 슬쩍 끌어당기며 남이 잘 볼 수 있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과시하듯 남자는 ‘나는 이제 이런 자동차를 타는 사람이야’라고 자랑할 수 있는 물건으로 수입차를 사기 때문에-.

 물론 이건 BMW의 성능이 뒷받침됐기에 다 가능한 얘기다. 클럽 BMW는 동호회원 91%가 남자다. 남자가 원래 자동차에 더 열광하지만 BMW는 그만큼 더 남성적인 차라는 얘기다. BMW 5시리즈를 타는 반채흥(42·증권사 근무)씨도 남성적 매력에 끌렸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원래 아반떼부터 그랜저까지 줄곧 국산차를 타왔다. 우연히 시승을 해봤는데 BMW 엑셀레이터에 발을 얹자마자 다이나믹하게 응답이 오는 데 확 빨려들었다.

 클럽BMW 회원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BMW를 좋아하는 이유로 드라이빙 느낌을 포함한 뛰어난 성능(36.5%)을 꼽은 이들이 가장 많았다. 누구는 말한다. “아내는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지만 BMW는 마음 먹는 대로 튀어나간다”고. 내 맘대로 되는 차, 남자로선 얼마나 매력적인가.

 BMW가 줄곧 Sheer Driving Pleasure(진정한 운전의 즐거움)를 모토로 내세우는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1960년대 후반 BMW를 미국에 소개할 무렵부터 스포티한 운전 성능을 강조하며 ‘스포츠맨의 자동차’라는 슬로건을 모든 광고에 사용했다. BMW코리아 박혜영 홍보총괄 매니저는 “스포츠 세단의 선구자 격으로 꼽히는 BMW 3시리즈는 세로 배열 엔진과 후륜구동 시스템, 50대50의 균형을 이루는 앞뒤 바퀴의 하중 비율 등을 적용해 운전자가 다이내믹한 주행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고 했다.

 혹자는 한국에서의 BMW의 성공을 오히려 우려하기도 한다. 누구나 타고 싶은 차에서 누구나 타는 차로 이미지가 추락한 게 아니냐는 거다. 그러나 이건 프리미엄의 대중화로 보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BMW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니까.

1933 BMW 303

History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독일 뮌헨에서 항공기 엔진 회사로 출발했다. 이듬해 바이에리셔 모토렌 베르케(Bayerische Motoren Werke·바이에리셔 엔진 제작소)라는 설비회사를 인수하면서 BMW로 불리기 시작했다.

엔진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독일공군기에 장착됐으나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자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항공기 제조가 금지됐다. 이후 모터사이클 제작에 나섰다가 28년부터 자동차생산에 진출했다.

1979 BMW M1

영국 자동차회사 오스틴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딕시를 인수해 1929년 BMW 315를 처음 만들었다. 33년 BMW 320을 선보였는데, 그릴 위에 파랑·하양·검정의 BMW 엠블럼을 처음 달았다.

본사가 있는 바바리아주 푸른 하늘과 알프스의 흰 눈을 상징하는 푸른색·백색을 사용해 회전하는 프로펠러 형상을 본뜬 것이다. 같은 해 나온 6기통 BMW 303에 콩팥 모양의 키드니 그릴을 처음 사용했다.

1999 BMW X5

자회사인 BMW Motorsport GmbH가 72년 출범했다. 모터스포츠를 위한 머신을 제작하고 레이싱에 참가하는 게 초기 목적이었으나 이 기술과 모터스포츠 경험을 바탕으로 M시리즈를 제작했다. 1979년 이탈리아 공장에서 탄생한 M1에 이어 85년 M535i가 출시됐다.

BMW X5가 1999년 스포츠 액티비티 비히클(SAV)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출시된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160만 대 이상 판매됐다. SUV와 세단의 미묘한 경계선에서 즐거움을 주는 모델로 인정받았다.

2002 BMW 7시리즈

BMW의 전 디자인부문 총괄책임자 크리스 뱅글(57)이 2002년형 7시리즈를 선보이자 한껏 올라간 트렁크 때문에 ‘뱅글 버트(엉덩이)’라는 혹평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독창적인 디자인은 다른 브랜드가 유사하게 따라 하는 결과를 낳았다.

김성탁·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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