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호기심' 탐구가 중요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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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즘 우리나라에도 영재교육 바람이 불고 있다. 영재교육을 하자면 영재교육에 종사할 교사가 필수적이라서 일년에도 수차례 연수가 실시되고 있다. 나는 영재교육 전문가는 아니지만 수년간 서울대 영재센터와 화학올림피아드 교육을 통해 우수한 중.고등학생들을 만나고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겼다. 그래서 교사 연수에 자주 불려다닌다. 아무리 바빠도 교사 연수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직접 만나고 가르칠 수 없는 학생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영재교육의 바람직한 방향은 어떤 것일까? 요즘 지나친 선행학습이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가 되고 있다. 오래 전이지만 나도 2년 위인 형이 중학교 입시 준비를 할 때 형이 공부하는 입시 준비서를 훔쳐보면서 중학생이 되는 기분을 맛보기도 했다.

어려운 문제를 풀면 그 재미에 더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선행학습은 그 나름으로 의의를 가지고, 미국에서도 'AP(advanced placement)'라는 이름으로 많은 고등학생들이 대학 수준의 과목을 택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ㄱ, ㄴ'을 배워야 할 어린이들이 책을 줄줄 읽고 입학을 한다면 학교 공부에 흥미를 느낄 리 없고, 자칫하면 딱딱한 학원식 선행학습은 수학이나 과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하는 역효과를 낼 우려가 있다.

영재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위 영재들은 흥미를 느끼면 스스로 찾아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기 때문에 영재교육은 이들에게 호기심을 길러주고 스스로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해 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새싹이 돋아나는 이른 봄이다. 자세히 살펴 보면 밤새 눈에 띌 정도로 새싹이 자란다. 새싹이 돋아나기 위해 원자.분자들은 얼마나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일까? 교과서적으로만 원자에 대해 공부하는 대신 이런 우리 주위의 문제를 통해 원자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나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즐겨 낸다.

새싹이 돋아나는 가지에서 싹을 하나 선택하고 하룻밤 사이에 싹이 얼마나 자라나 관찰하자. 하룻밤 사이에 싹이 그만큼 자라려면 1초당 원자들이 몇 층으로 쌓여야 하나? 그러면 학생들은 난생 처음으로 싹이 자라나는 속도를 재보고, 한참 자랄 때는 하룻밤 사이에 거의 1㎜나 자란다고 자로 잰 결과를 가져온다.

연한 새싹의 대부분은 물이다. 원자 수로 물의 3분의2를 차지하는 수소는 얼마나 작을까? 인터넷에서 http://www.google.co.kr로 들어가 수소. 지름을 치고 검색하니 수소의 지름은 1옹스트롬(1천만분의1㎜)이라는 정보가 뜬다.

새싹이 하룻밤 사이에 자란 길이는 수소의 키의 1천만배나 되는 것이다. 하루는 거의 10만초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새싹이 한참 자랄 때는 원자 층이 매초 1백개 단위로 쌓여 가는 셈이다. 어느 숙련공도 흉내내지 못할 속도다. 이런 사실을 깨달으면 중학생도 대학생도 원자의 세계를 가깝게 느끼게 된다.

워즈워드는 어린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했다. 이공계 기피를 탓할 것이 아니라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 학생들이 순수한 호기심을 잃어버리기 전에 자연을 탐구하고자 하는 열정을 심어 주고, 어려운 과학 기술의 길을 택하는 꿈나무들이 후일 안정적으로 연구에 종사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특히 기초과학은 그 열매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김희준 <서울대 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