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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히스토리] 마이애미 히트 (1)

중앙일보

입력

◇ 구단의 태동

마이애미 히트는 샬럿 호니츠와 같은 시기인 1988~89시즌 NBA 처음 참가했다.

그들의 NBA 참가 결정은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선수 출신이자 팀 단장과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던 빌리 커닝햄과 친구이자 NBA에서의 동료였던 루이스 샤펠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커닝햄과 샤펠은 새로운 NBA 팀을 마이애미에 유치하기로 결정했고 3명의 투자자를 규합하게 된다.

그들은 영화제작자인 제브 버프맨, 가수로서 유명한 홀리오 이글레시아스, 미키 아리슨이었다.

이들은 NBA 측의 연고지 심사 위원회에 리그 참가 신청을 냈고 NBA는 이를 허가함으로서 1987년 4월 22일 공식적으로 프랜차이즈를 선언하게 된다.

NBA측은 샬럿 호니츠와 함께 마이애미 히트를 새로운 24, 25번째 팀으로 승인했고 히트는 호니츠와 함께 1988~89시즌부터 정식으로 리그 경기 참가를 허가 받는다.

그들은 리그 참가에 앞서 가장 먼저 '확장 드래프트(expansion draft)'를 통해 선수단을 구성했다.

당시 신생팀이던 히트와 호니츠는 기존의 NBA 팀들로부터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된 선수들 중에서 그들의 첫 번째 선수단을 선발하게 된다.

선발 순서를 정해 동부 컨퍼런스에 속해있던 호니츠가 먼저 선수를 뽑았고 당시 서부 컨퍼런스 소속이던 히트가 호니츠에 이어 선수를 선발했다.

히트의 역사적인 첫 번째 확장 드래프트의 주인공은 아비드 크라머였다.

당시 그를 선택하자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의문을 나타냈다.

그도 그럴 것이 크라머는 206cm의 포워드로 아구스타나대학을 나와 197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45순위로 유타 재즈에 의해 선발된 이후 덴버 너게츠로 트레이드 되었고 8경기만을 뛰며 평균 1.5득점을 남긴 이후 NBA에서 뛴 기록이 없던 완전 무명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왜 그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팬들의 의문과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곧 진실은 밝혀지게 된다.

크라머는 1980년 댈라스 매버릭스가 신생팀으로서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너게츠로부터 권리를 양도받았던 선수로서 히트가 그를 지명한 대신 매버릭스가 1988년 신인 드래프트 지명권을 히트에게 넘긴다는 거래였다.

매버릭스는 당시 빌 웨닝턴, 우베 블렙, 스티브 알포드를 비롯한 젊은 유망주들을 확장 드래프트를 통해 잃고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크 어과이어, 로날도 블랙맨, 샘 퍼킨스, 데릭 하퍼 등의 베테랑 선수들 또한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하기를 꺼려 확장 드래프트에 앞서 미리 히트와 협상을 했던 것이다.

어쨌든 79~80시즌 이후 단 한 경기도 매버릭스를 포함한 다른 어떤 NBA 팀에서도 뛴 바 없는 크라머는 졸지에 신생팀인 히트 소속으로 적을 옮기게 되었다.(물론 8시즌 동안 계속 매버릭스의 선수 명단에 올려져 있었다는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히트는 크라머를 시작으로 확장 드래프트를 실시했고 당시 이를 통해 신생 구단의 선수로 선발된 이들은 다음과 같았다.

* (2)편에 계속

류한준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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