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곤·윤석열 국감서 충돌 검찰 지휘체계 붕괴 생방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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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에 대한 공소장 변경 허가신청 과정을 둘러싸고 21일 지휘책임자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특별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정면 충돌했다. 이날 서울고검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한 윤 지청장(위)이 답변을 하기 위해 조 지검장 뒤를 지나가고 있다. 조 지검장과 윤 지청장 모두 입술을 다물고 있다. [김성룡 기자]

“지검장에게 (국정원 트위터 사건) 보고를 하자 격노했다. ‘야당 도와줄 일 있나. 정 하려면 내가 사표를 낸 뒤 해라’고 했다. 검사장을 모시고 이 사건을 계속 끌고 나가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윤석열 여주지청장)

 “사적 대화를 했을 뿐 정식 보고가 아니었다. 보고라는 것은 윗사람에게 통보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저의 지휘에 문제가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21일 서울고검 청사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중앙지검에 대한 국정감사.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지내다 최근 배제된 윤석열(53·사법연수원 23기) 지청장과 지휘 책임자 조영곤(55·연수원 16기) 지검장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충돌했다. ‘상명하복’과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지켜온 검찰의 지휘체계가 사실상 붕괴되는 듯한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검찰에 대한 국정감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 수사를 놓고 여야가 격돌하는 게 보통이었다. 여야 의원이 자기 진영 논리에 따라 질의를 하면 검찰은 대개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답할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며 넘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회의원들을 앞에 놓고 검찰 내부끼리 서로 싸우는 초유의 양상이 전 국민에게 생중계됐다.

 이날 윤 지청장은 “수사 과정에 외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지검장이 “수사하지 말라고 한 적 없다”고 반박하면 다시 윤 지청장이 맞붙는 형태로 발언이 이어졌다. 윤 지청장은 “이번 사건에서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는 지휘 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서울중앙지검의 공안사건을 지휘하는 이 차장은 “검찰총장으로부터 이 사건의 수사 총괄 및 공보 책임을 부여받았다”고 맞섰다.

 여야 의원들도 격돌했다. 여당은 윤 지청장을 몰아세웠고, 야당은 그를 정의로운 검사라며 옹호했다.

 “조폭보다 못한 행태다. 시정잡배보다 못한 항명이자 하극상이다.”(새누리당 정갑윤 의원)

 “중앙지검장은 부하직원과 진실게임을 하며 수사팀 전체를 파렴치하게 몰아가고 있다.”(민주당 박범계 의원)

 조 지검장은 국정원 댓글 특별수사팀에 대한 지휘권을 갖고 있다. 윤 지청장은 팀장으로 수사 과정의 주요 사항을 조 지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이날 윤 지청장은 “이렇게 된 마당에 다 말하겠다”며 조 지검장과 사석에서 나눈 얘기까지 공개하며 정면으로 공격했다.

 이날 윤 지청장의 공격은 여당의 지적대로 ‘하극상’ ‘항명’으로 비칠 정도로 조 지검장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대검 중수부 폐지 후 주요 사건의 수사를 도맡아 지휘해야 할 위치에 있는 그가 후배에게 ‘들이받히는’ 모습을 보이며 리더십에 큰 훼손을 입은 것이다. 조 지검장은 윤 지청장이 계속 맞서자 순간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국감을 지켜보던 한 부장검사는 “ 사건의 본질을 떠나 검찰이 이처럼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정치권과 국민 앞에 드러낸 데 대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더 이상 검사란 말도 못하겠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이 지금까지 검찰이 보여온 ‘정치 검찰’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강원택(정치학) 서울대 교수는 “정치 검찰이 스스로의 권위와 국민적 신뢰를 상실했음을 보여준 상황”이라며 “정치권 눈치를 안 보는 독립적 검찰상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내부의 신뢰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부산지검장을 지낸 문영호 변호사는 “과거에도 특수부 라인에선 선후배 간에 갈등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대부분 내부적으로 해결해 드러나지 않았다”며 “결국 조직 내부 간 신뢰 회복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선 인사권자가 수사 때마다 적합한 인사를 지휘권자로 지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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