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부 역할 맡은 서울중앙지검 흔들 "최고 사정기관 검찰, 난파선이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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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국내 사정기관의 중추다. 이 중에서 서울중앙지검은 검찰의 핵심 수사 조직이다. 특히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검찰총장의 직할 수사기구였던 대검 중수부가 폐지되면서 대기업 비리나 권력형 사건의 중앙지검 집중 현상은 심화돼 왔다.

 지난 4월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처음 손을 댄 게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지난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했다. 또 CJ그룹 탈세, 4대 강 공사 담합사건도 처리했다. 현재 효성그룹 탈세 사건과 동양그룹 CP 사기발행 사건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조 지검장이 윤석열 여주지청장으로부터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배척당하는 일이 발생한 데 이어 21일 서울고검·지검에 대한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윤 지청장이 이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이로 인해 검찰총장이 없어 길태기 대검 차장의 대행체제로 운영 중인 검찰 조직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주요 사건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윤 지청장은 이날 “지검장님을 모시고 이번 (국정원 대선 개입) 수사를 끝까지 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공개했다. 트위터 작업을 통해 지난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강제수사 필요성을 보고하자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였다. 검찰은 그동안 ‘정치권력의 시녀’라는 비판도 받았다. 사건 처리를 놓고 내부 갈등이 불거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대외적으로 통일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던 건 ‘검사동일체 원칙’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대검 중수부장 출신 박영수 변호사는 “검사동일체의 원칙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면서 검찰은 난파선이 된 상황”이라며 “최고 사정기관의 위상을 어떻게 회복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서울남부지검장을 지낸 고영주 변호사는 “검찰이 저렇게 막가는 식으로 나오니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란 분석도 있다. 지난해 한상대 검찰총장의 사임까지 초래한 ‘검란(檢亂)’ 때 불거진 검찰 내 특수통 검사와 기획·공안통 검사의 갈등이 봉합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어정쩡한 상태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현철 기자

◆검사동일체 원칙=검사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통일적인 조직체의 일원으로 상명하복의 관계에서 직무를 수행한다는 원칙. 그러나 검사가 상사의 명령에 구속된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2003년 ‘구체적 사건에 대해 상급자의 지휘·감독의 적법성이나 정당성에 이견이 있으면 검사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일부 수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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