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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총련 본부 경매, 일·북·몽골 커넥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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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달 13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일본을 공식 방문한 몽골의 노로브 알탄호야그 총리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의 핵심은 가장 뒷부분이었다. “납치 문제 등의 ‘미해결 제(諸)현안’은 포괄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일본의 입장을 몽골은 지지한다. 또 일본은 현안 해결을 향한 몽골 정부의 입장을 존중하며 유의한다.”

 이처럼 애매한 문장의 속뜻이 뭔지 일본 언론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로부터 불과 16일 후.

 이번에는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이 돌연 일본을 찾았다.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한 뒤 귀국하는 길이었다. 대외 발표는 “아베 총리의 (사적인) 초청에 의한 것”이라고만 했다. 그는 총리 관저가 아닌 아베 총리의 도쿄 시부야 사저에서 아베 총리와 한 시간 동안 밀담을 나눴다. 일 총리가 사저에서 다른 나라 국가원수와 회담을 나눈 건 극히 이례적이다.

 보름 정도 사이에 몽골의 1, 2인자가 따로 일본을 방문한 이유는 뭘까.

 단초를 제공하는 뉴스가 지난 17일 도쿄지방법원에서 나왔다. 도쿄의 노른자 땅에 있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일본에서는 총련) 본부 건물과 토지에 대한 입찰에서 ‘아바르’라고 하는 몽골의 비즈니스 컨설팅 회사가 낙찰 받은 것이다. 아바르가 써낸 입찰가는 50억1000만 엔(약 543억원). 당초 예상 낙찰가를 크게 웃돌았다.

 하지만 일 언론의 확인 결과 아바르는 올 1월 자본금 6만 엔(약 65만원)에 세워진 ‘페이퍼 컴퍼니’였다. 이 때문에 “북한이 사실상 대사관 역할을 해 온 조총련 건물을 제3자에 넘기지 못하도록 우호국인 몽골의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낙찰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재임 중 납치자 문제는 반드시 해결할 것”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아베 정권도 납치자 문제 진전을 위해 이를 눈감았다는 것이다. 일본은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과의 자금 거래를 철저히 통제하고 있어 북한 자금이 직접 들어오기는 불가능하다.

 조총련 본부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게 된 것은 일 정부의 공적 자금이 들어간 조총련계 조은신용조합이 잇따라 파산했기 때문. 채권을 승계한 일본 정리회수기구(RCC)가 조은신용조합이 대출해준 돈 가운데 약 627억 엔은 사실상 조총련이 받은 것이라며 지난해 7월 경매를 신청했다.

 올 3월 1차 경매에선 북한을 수십 차례 방문했고 북한 고위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사찰 사이후쿠(最福)사의 이케구치 에칸(池口惠觀) 대승정(大僧正)이 45억1900만 엔에 낙찰을 받았지만 “북한의 대리인 아니냐”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포기했다.

 이때부터 ‘몽골 카드’가 본격 가동됐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비서관 출신으로 현 아베 정권에서 ‘북한 문제 해결사’ 역할을 맡고 있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자문역)가 1차 낙찰 무산 직후인 5월 14일 북한을 전격 방문, ‘몽골 루트’를 본격화했다.

 일본 내 한 정보관계자는 21일 “몽골 회사가 조총련 건물을 인수하게 되면 여론의 압력에서 자유로워 다시 조총련에 임대 형식으로 건물을 사용하게 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일본-몽골-북한’의 3각 커넥션은 3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과 관련해 최근 외교관계가 최악인 한국에 기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북한과 수교가 있는 몽골로 ‘파트너’를 바꾸었다. 아베 총리와 가까운 한 인사는 “아베 총리는 이미 몽골 측에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북한을 방문할 의지가 있다’는 메시지도 전했다”고 말했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27일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국가원수 급으로는 처음 북한을 방문해 아베의 뜻을 전달할 방침이다.

 북한은 1986년 이후 일본 내 거점이었던 조총련본부를 유지할 수 있게 되고 ‘납치자 문제’를 외교카드 삼아 경제원조 등의 실속을 챙길 수 있다. 이미 몽골은 지난 7월 쌀 2000t과 쇠고기 10t을 북한에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몽골 또한 일본과 북한 간 중재자 역할을 통해 일본으로부터의 경제협력과 투자를 원하고 있다.

 다만 관건은 22일로 예정된 도쿄지방법원의 최종 결정. 법원은 몽골의 ‘아바르’에 대해 지불 능력 등에 대한 종합 검토를 거쳐 매각 허가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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