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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사후세계도 스펙 따라 길이 나뉜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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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얼마 전 모친상을 당한 지인과 저녁 식사를 했다. 위로의 말을 건넸더니 그가 꿈 이야기를 꺼냈다. 장례를 치르고 며칠 후 꿈을 꾸었는데, 어머니가 오래전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의 팔베개를 베고 두 분 다 편안히 웃고 계시더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동안 꿈에 나타나지도 않으셨는데, 참 신기하고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했다. 듣는 이의 심정까지 포근해지는 꿈이다.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 꿈에라도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황진이의 한시(‘상사몽’)가 바탕이 된 가곡 ‘꿈’도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로 시작한다. 죽음으로 갈린 사이라면 더욱 안타깝고 절실해진다. 선인들은 죽음 저편을 애써 미화함으로써 위안을 얻고자 했다. “거기(저승)가 얼마나 좋으면, 하고 많은 사람 다들 가서는 안 돌아오느냐 그 말일세. 거기서 돌아온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단 소리 듣기나 했던가.”(김열규,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 이후 세계를 꿈이 아니라 실제로 다녀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임사체험(NDE, near-death experience)이다. 임사체험은 19세기 말부터 과학적인 연구가 시작된 분야로, 오늘날도 의학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체험담을 담은 책들도 적지 않게 나와 있다. 요즈음 내가 흥미 있게 읽은 책은 『죽음, 그 후』와 『나는 천국을 보았다』이다. 둘 다 의사가 쓴 책이라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전자는 임사체험을 주장하는 전 세계 1300여 명을 설문조사해 통계학적으로 정리한 결과를, 후자는 신경외과 의사 본인이 체험한(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들이 내린 결론은 사후세계는 진짜 있다는 것, 무섭지 않고 아주 행복한 세계라는 것, 현세든 내세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도 미국 미시간대 연구팀이 쥐의 심장을 강제로 정지시키고 뇌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유체이탈 등 임사체험 경험은 뇌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돼 생기는 착각”이라고 주장하는 등 반론도 거세다.

 지난주 이란 언론은 교수형이 집행돼 의사의 사망 선고까지 받은 마약사범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식을 전했다(본지 10월 18일자 23면). 가족들은 기적이라며 기뻐했지만, 법원의 재집행 명령으로 다시 사형을 기다리는 불쌍한 처지라는 것이다. 그에게 물어보면 임사체험의 진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사후세계 여부가 과학적으로 낱낱이 밝혀질 경우 적지 않은 혼란도 뒤따를 것이다. 누구나 행복하다면 자살이 급증할 것이고, 천국·극락과 지옥으로 갈린다면 좋은 데로 가기 위한 이승에서의 스펙 경쟁이 치열해질 터이다. 하긴, 그 스펙이라는 걸 우린 이미 알고 있다. 남 해코지 않고 착하게 사는 일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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