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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현장 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향수에 몸부림치는 의사 가족|아주 (2)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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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반도의 1백40배가 넘는 광활한 대륙과 81명의 의사-. 아프리카의 한국인 의사들이 겪는 고독감은 이러한 숫자의 대비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우간다의 「포트·포탈」 시립 병원에 근무하는 강갑수씨 (34)의 경우 주말이면 왕복 1천km의 초장 거리 여행을 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다. 5백km를 달려가면 『가장 가까이 사는 한국인』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격무에 풀 솜처럼 시달린 몸을 조용히 쉬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꼬마들의 성화 때문에 안 가고는 못 배긴다는 것이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이들은 한국인을 자주 볼 수 없다는 「고독한 고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버리코스트 디보 병원에 근무하는 이상익 (41) 안순구 (36) 양씨의 경우는 이보다 한결 더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4월 원양 어선단의 일원으로 아프리카에 왔던 안부웅씨 (김용문호 갑판장)가 발목을 삐어 디보 병원을 찾아왔을 때의 일이다. 1년 열두달 가도 한국인이라고는 두 집 가족밖에 볼 수 없었던 터라 두 집안은 당장 잔치 기분이 되었다.
두집 꼬마들의 「열렬한 환영」 때문에 환자는 입원실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양쪽집을 번갈아 다니며 「요양과 잔치」를 함께 했다.
한데 안씨의 발목이 2주일만에 완쾌되어 일자리로 돌아가게 되자 두 집의 꼬마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좀더 같이 지내도록 해달라는 것. 안·이 두 의사는 꼬마들의 등쌀에 못 이겨 변칙적 (?) 인술을 베풀기로 합의했다. 완치된 발목에서 깁스를 떼 주지 말자는 것. 안 갑판장은 결국 멀쩡한 발목에 깁스를 한 채 2주일을 더 머무르다가 떠났다. 『사흘 지나서 냄새 안 나는 손님 없다』는 속담은 아프리카의 한국인 사회에서만은 도저히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의사들이 고독감 못지 않게 신경을 쓰는 것은 자녀들의 교육 문제. 말과 교육 과정이 너무나 현격하게 달라서 자칫하다가는 『자녀들 때문에 귀국을 망설이게 되는』경우도 허다하다. 왜냐하면 아이버리코스트, 세네 갈등 전 프랑스 식민지에서는 지금도 프랑스어로 교육을 시키고 우간다, 케냐 등지에서는 전 교과 과정을 영어로 배우게 되었기 때문.
따라서 중학교 다니게 되면 우리 말보다 영어나 불어가 훨씬 편리하게 되고 개중에는 우리 말을 완전히 잊은 아이들도 있다.
교육 문제 뿐만 아니라 성숙한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결혼 문제도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나이로비 외국인 대학을 거쳐 런던 유학까지 마친 김미영양 (23·김충희 박사의 장녀)은 뛰어난 미모와 나무랄데 없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그 흔한 중매하나 안 들어왔다』고 한다고 김 박사는 『사방 1만km 이내에 미혼 한국 청년은 한 명도 없다』면서 『오는 가을쯤에는 프랑스의 삼촌댁 (김양희 박사·프랑스 편에서 소개)을 거쳐 서울에 보내 볼 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골치 아픈 문제를 떠나 아프리카 근무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각별한 재미」도 많이 있다. 특히 흑인들 특유의 순박성은 『떠날 적의 발걸음마저 무겁게 해 줄만큼』 (강갑수·우간다) 아름다운 것이라 했다. 그만큼 티없이 맑은 마음으로 신뢰와 존경을 바친다는 것이다. 예컨대 수술 끝에 목숨을 잃는 경우에도 유가족들이 항의하는 사태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독특한 풍속 때문에 몹시 난처한 입장에 서게 되는 경우도 흔히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른바 「친자 확인 판별」. 문제의 발단은 열대 지방 특유의 개방적 성 생활 풍습 때문. 미혼의 처녀가 아기를 갖는 일이 허다하고 그때마다 아기의 아버지가 서너명씩 나타난다. 이 경우 도지사나 재판장은 의사를 불러서 『어느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인가』를 판별하도록 명령한다는 것이다. 의사의 한마디가 절대 권위를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밖에 우간다에서는 이 나라 특유의 결혼 풍습 때문에 부인들의 「상해 진단서 청구」가 업무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결혼하기전 남자가 신부집에 바치는 가축 (젖소 1백마리∼9천마리까지)은 이혼과 동시에 반환 받도록 되어 있지만 부인의 상해 진단서 3통만 있으면 돌려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 따라서 부부 싸움이 끝나면 여인들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곳이 병원이라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독특한 풍속 때문에 발생하는 이러한 얘깃거리 외에 한국의 풍물로 한몫 보는 경우도 없지 않다. 불고기와 인삼차의 요리 솜씨로 니제르, 하마니·디오리 대통령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는 조규자 여사 (36)가 그 한 예이다.
조 여사가 대통령 관저에 첫 나들이를 간 것은 디오리 대통령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지 사흘깨 되던 날 (69년10월). 진료 가방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대통령의 주문은 전혀 엉뚱했다. 『불고기와 신선로를 좀 만들어 줄 수 없겠느냐』는 것. 그 이후로 조 여사는 사흘이 멀다하고 대통령 관저를 드나들어야 했다. 전용 쿡에게 요리 방법을 가르쳐줘서 대신 시켜봤지만 『아무래도 조 여사가 한 것만 못하다』는 통에 지금껏 직접 봐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디오리 대통령이 조 여사의 불고기를 얼마나 즐기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한번은 불고기를 곁들인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보온병을 가져오라고 분부, 병 가득히 불고기를 다져 넣고 나서 『첫번째 비행기편으로 아비잔에 유학간 딸한테 보내라』고 명령하더라는 얘기이다. 요리뿐만 아니라 대통령 가족 중에 누가 병이 나면 전문 분야 여부를 가리지 않고 조 여사를 불러들인다. 마담 디오리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 가족은 조 여사의 손을 탄다』고. 똑같은 재료와 처방이더라도 조 여사의 손을 거치면 『신기할 정도로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정정>
전회 우간다의 김창희 박사는 김충희 박사의 오식이므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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