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아버지를 손수 염한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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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호 27면

봄꽃의 향연이 엊그제만 같은데 어느새 단풍 들어 가을이다. 고운 빛깔로 단장한 산천초목이 매일 새 얼굴로 우릴 맞이한다. 저토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묵묵히 덧없음에 귀의하는 이 가을 자연이야말로 생사의 스승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가을에 출가했다. 첫 삭발의 뒷목덜미 서늘한 찬 기운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래선지 가을은 늘 새롭고도 무상하다. 무상한 계절이니 쓸쓸한 얘길 하나 할까 한다. 출가자는 부모 형제를 자주 뵐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 몇 년에 한 번 뵐 때도 있고 돌아가실 때나 겨우 뵙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속가에 갔을 때다. 마침 동네 어르신 친구분이 돌아가셔서 초상집에 다녀오시는 아버지를 뵙고 인사를 드렸다.

마지막 남은 친구를 보내고 오신 아버지는 술 한 병 들고 와서는 말없이 잔에 부었다. 연거푸 석 잔쯤 마셨던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내가 죽으면 누가 날 위해 염을 해주지? 이제 다 떠나서 나를 보내줄 놈 하나 없네.” 나는 안쓰러워 “딸이 스님인데 무슨 걱정이세요. 제가 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큰소리쳤다. 나의 호언장담이 기특했는지 엷은 미소가 아버지 입가에 어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제일 먼저 그 생각이 났다. 염을 해드리겠다던 바로 그 약속! 장례식장에는 염하는 절차를 하는 분들이 있다. 직접 나서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그러나 내 마음이 그렇지 않았다. 생전에 했던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드리고 싶었다. 어떻게 하는지는 전문가가 가르쳐줬다. 나는 건네받은 소독 솜으로 아버지의 목과 가슴, 팔다리를 조심스레 닦아드렸다. 그런데 냉장 보관실에서 갓 꺼낸 아버지의 팔을 처음 잡는 순간, 그 차가운 느낌으로 인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예상은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뿐, 실상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 이런…. 깎은 머리가 부끄러웠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소독약 냄새와 교묘하게 섞인 고인의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혼미하기까지 했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리에 힘을 꽉 주고 일을 끝까지 거들었다.

모든 것이 다 마무리됐을 때 주머니 없는 옷을 입고 얼굴만 내밀고 있는 아버지를 꼭 안아드렸다. 나중에 듣자 하니 그 모습을 밖에서 지켜보던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염불하던 도반 스님은 눈물이 하도 나서 염불을 못했을 정도였다 하니 퍽이나 안타까운 광경이었나 보다. 어쨌거나 약속을 지켰으니 그럼 됐다. 그 일은 효의 개념보다도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지켜야 할 최후의 의리였다고 생각한다. 한 인간이 살아온 생의 마지막을 지켜봐 준다는 것은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예의이자 의리가 아니겠는가. 죽은 이는 말이 없고, 그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는 마지막 길을 잘 보내주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너무 흔한 배신을 경험한다. 어떻게 보면 세상은 그대로 있는데 너와 내가 변하고 있다는 말이 더 타당하다 느껴질 정도다. 그저 흘러가는 세월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편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인간의 무리 속에서 살고 있으니 그들을 대하는 태도쯤은 올곧게 가슴에 새기고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여 나는 이 세상이 정말이지 의리를 지키며 우리 모두가 서로 외면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순 속에서 호흡을 고른다. 우선 나부터.



원영 조계종에서 연구·교육을 담당하는 교수아사리. 불교 계율을 현대 사회와 접목시켜 삶에 변화를 꾀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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